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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Feb 03. 2021

인삼의 은폐된 역사를 밝히다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설혜심 교수는 《그랜드투어》와 《소비의 역사》를 통해 만났었고, 그 만남에 대한 신뢰로 《인삼의 세계사》까지 읽게 되었다. 웬 인삼? 이지 싶을 정도로 이전의 책들과는 이질적인 소재이고, 또 왜 서양사학자가 인삼에 관심을 가지고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믿음은 있으면서도 혹시나 이러저런 이차 자료를 통한 겉핥기 같이 좀 허술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믿음이 의구심을 눌렀다! 설혜심 교수는 인삼에 관해 정말 꼼꼼히 조사했고, 그것을 역사적 관점을 놓치지 않으면서 서술해냈다. 주경철 교수의 언급대로 ‘집요하고 치밀하게’ 연구했고, 그 성과를 대중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우선 놀란 것은 인삼이 우리나라, 내지는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항해시대 이후 서양에서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 외에도 북미에서도 인삼(좀 넓은 의미의 인삼, 죽 화기삼이지만)을 발견하고 채집했으며, 미국이 독립 이후 최초의 수출품이 바로 인삼이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가끔 인삼 내지는 그 성분의 효능에 대한 연구 결과가 뉴스를 통해 나올 때가 있다. 그게 순전히 ‘우리의 인삼’에 대한 것인지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대항해시대 이후 향료를 비롯하여 다양한 식물들이 식민지 플랜테이션과 노예 노동으로 생산되게 되면서 생산과 소비의 왜곡이 벌어졌던 데 반해서 인삼의 운명이 달랐는데, 그 까닭에 대한 분석도 매우 흥미롭다. 이 인삼이라는 상품의 수요가 전적으로 중국에 달려 있어서 서양이 주도권을 잡기 힘들었던 사정과 인삼 가공 기술을 미국이 중국을 따라갈 수 없었다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더 흥미롭게는 이 인삼 재배가 쉽지 않았던 점도 그런 다른 식물과는 다른 운명을 걷게 만들었다. 매우 까다로운 재배 조건으로 말미암아 특히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인삼 재배가 다른 곳에서는 쉽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인삼은 여전히 신비로운 약재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서양이 인삼과 관련하여 헤게모니를 잡을 수 없었던 사정은 다른 파급 효과를 낳았다. 인삼이 소비가 동아시아에 한정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인삼에 대한 배타적인 인식도 함께 가지게 되었고, 그 효과와 함께 역사마저도 은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인삼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하기가 쉽지 않았던 한계와 더불어 사치와 비합리성의 상징으로 포섭하지 못한 주변부 문화에 대한 의도적 무시와 비아냥, 배척이 인삼에 행해졌던 것이다(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서양사학자 설혜심 교수가 이 인삼에 관심을 가진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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