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Feb 01. 2021

개항에서 세계화까지, 우리 식탁 백년사(史)

주영하, 《백년식사》


강화도조약에 의해 강제로 개항이 이루어진 게 1876년이다. 그 이후로 우리의 식탁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재료와 조리 방식 등이 우리 식탁으로 올라왔고, 우리의 것과 혼합되었다. 물론 그 이전이라고 해서 온전히 우리의 것이 우리의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우리의 식탁이 변화무쌍한 경험을 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주영하의 《백년식사》는 바로 그로부터 백년이 넘는 우리 식탁의 변화를 다큐멘터리식으로 훑고 있다(정말 읽으면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성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주영하는 그 백년이 넘는 우리 식탁의 역사를 여섯 개의 시기로 나누고 키워드를 개항, 식민지, 전쟁, 냉전, 압축성장, 세계화로 정하고 있다. 단어만 보고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다루고, 의미하는지가 금방 연상이 될 정도로 함축적이고 직관적이다. 각 시기에 우리의 식탁이 어떤 모습이었고, 또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는 읽어보면 알 일이지만, 특히 내가 관심이 간 시기는 압축성장의 시기, 즉 1960년말부터 1990년대초반까지다. 다른 이유는 아니다. 내가 성장한 시기에 익숙한 제품의 이름들이 연이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라는 얘기다(그 앞의 시기는 내가 경험하지 않았고, 세계화의 시기는 너무 가깝고, 지금의 내가 그 한가운데에 있을지도 모르는 변화이기에 변화라 여겨지지 않는 점도 있다).


압축성장의 시기는 육류 소비가 늘면서 LA 갈비가 등장하고, 삼겹살이 유행이 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엊그제 집근처 마트에서 조우한) 분홍색 소지지가 내 도시락 반찬으로 들어 있는 날은 행복한 날이었고, 비엔나 소지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부라보콘, 누가바는 지금도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서슴없이 짚는다(바밤바, 쥬쥬바, 새로미바 등의 이름은 추억을 자극할 뿐이지만). 캡틴큐와 나폴레온이라는 질이 떨어지는 위스키가 있었고,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대전(大戰) 가운데 조용필의 맥콜과 주윤발의 밀키스가 비집고 들어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횟집이 대중화되고, 여기저기에 ‘가든’이 생겨나던 시기였다.


그 시기를 거쳐 우리는 세계화의 시기 속에 있다. 주영하는 몇 가지의 예를 들면서 세계화에 편입되어 있는 우리 입맛(열대과일, 서양 채소, 연어와 랍스터, 마라탕 같은 매운 맛, 케첩을 비롯한 다양한 소스 등)을 얘기하지만, 그게 너무나 일부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 것을 지키자는 얘기가 사실은 공허한 것이,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많은 음식이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오늘 저녁 우리 집 식탁에 오른 멸치볶음을 봐도 그렇다. 멸치가 음식으로 쓰이게 된 것이 식민지 시기에서야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하다.


순식간에 우리 식탁의 변천에 관한 몇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연속으로 본 느낌이다. 배가 부르기도 한데, 또 중간중간 씁쓸한 맛도 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과학으로 만나는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