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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an 31. 2021

과학으로 만나는 '나'

빌 설리번,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나로 만드는 것들은 무엇인가? 철학적 질문처럼 들리지만 여기서는 과학의 질문이다(하지만 이 과학의 질문들에 답을 해나가다 보면 결국엔 철학이 되어간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이루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크게 보면 나의 몸과 정신이 있다. 몸이야 물리적인 것이니까 논란이 있을 수 없고, 나의 정신은 과연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 정신이라는 걸 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할까, 싶지만 과학자들은 이미 그에 관해서 많은 답변들을 시도해 왔다. 빌 설리번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은 바로 그 ‘나’를 이루는 것들에 대한 과학의 질문이자 답변이다. 과학으로 나를 만나는 시도다. 


빌 설리번은 나의 입맛과 식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내가 중독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의 기분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 나의 폭력적 성향은 무엇 때문인지, 내가 사랑에 빠지는 건 어떤 작용에 의한 것인지, 나의 뇌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특정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왜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우선 ‘나’는 유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전자의 작용, 혹은 이상으로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결정되고, 내가 아프고, 어떤 기분을 느끼고, 중독에 빠지는 것이 결정된다. 심지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도 결정된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있다. 유전자의 변화가 아니라 내가 놓인 환경(더 정확하게는 유전자가 놓인 환경)에 따라서 유전자가 켜지기도 하고, 꺼지기도 한다. 이 후성유전적 작용은 나한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아들, 딸, 심지어 손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미생물이 있다. 요즘은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이 미생물의 분포와 종류에 따라서 많은 질병과 비만, 기분 등이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다. 이 유전자, 후성유전, 미생물이 바로 ‘나’를 결정한다. 


그리고 환경이 있다. 이 환경은 후성유전을 통해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쥐 공원(rat park)’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행동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저자는 아이슬란드의 청소년을 예로 들기도 한다). 


마치 빌 설리번은 우리의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듯이 쓰고 있지만, 사실 그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쓰고 있다. 그것을 알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나의 미래’에 대한 문제인데,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이러한 과학 지식을 토대로 유전자를 고치고,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면서, 마이크로바이옴을 관리하면서 질병을 고치고 있다. 환원주의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비판을 하곤 하지만 바로 그 환원주의적 지식은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는 대신 고통을 완화하고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답은 과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존재가 아닌 바로 인간이기에 과학에 기대어 인간성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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