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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Feb 08. 2021

금지의 역사가 지식의 역사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금지된 지식》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과학사학자다. 국내에도 많은 책이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나는 특히 그의 필수 교양으로서의 과학이라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그리고 과학사에서 기존의 상식을 깨는 해석들을 통해 역사와 과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기도 했다.


《금지된 지식》은 과학사이지만, 또한 과학철학이기도 하다. 나는 평생 과학의 역사, 나아가 지식의 역사를 연구해온 그가 그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했을 때 그 역사를 다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 역사가 현대에는 어떻게 적용되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한 결과로 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보는 지식의 역사는 ‘금지’의 역사다. 여기서 금지라는 것은 연구 자체에 대한 금지, 연구 결과를 공포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한 금지를 모두 포함한다. “아는 것은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격언에서 볼 수 있듯이 지식은 힘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 힘은 기존 체제(그게 정치든 과학이든 어떤 것이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지식은 근본적으로 그것을 금지시키려는 지배층, 혹은 주류의 요구를 자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금지하려하면 할수록 지식은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되어 분명한 형태로 드러나고, 또 맹렬한 속도로 퍼져나간다. 바로 그런 금지에 대한 안티로서의 지식의 생산과 전파가 지식의 역사이고, 과학의 역사라는 것이 피셔의 주장이다.


‘금지된 지식’이라는 주제 자체는 매우 매력적이며, 따라서 많은 이들이 금서라든가, 또 다른 형태로의 금지, 억압에 대해서 써 왔다. 하지만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경우는 좀 다르다. 역사 속에서 그런 금지의 사례를 단절적으로 따 와서 그에 대해 쓰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들을 면면하게 이어서 스토리로 엮어 놓았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브루노와 갈릴레오로, 뉴턴과 아인슈타인으로, 원자폭탄과 세포 유전학으로, 그리고 페이스북으로 담대하고 넘다들고 있으며,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연관시켜 놓고 있다.


이런 역사에 대한 사유를 통해서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얘기하는 것이, 금지는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란 점은 무척 중요하다. 그는 지식의 어두운 면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이에 대해서는 《밤을 가로질러》에서도 논의하고 있지만, 지식이란, 지식의 개방이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긍정과 부정을 떠나서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짚고 있다. 원자폭탄 발명에 기여한 물리학자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20세기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197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발전되고 있는 분자생물학의 기술, 지식은 모두 공유되고 마음대로 사용되어도 되는가? 금지되어야 마땅한 사생활을 모두 스스로 공개해버리는 페이스북은 과연 어떤가? 통제 없는 지식은 과연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금지와 터부에 대한 안티로서 발달해 온 지식의 역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음을 이 과학사학자는 직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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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유익하게 읽고, 또 많은 깨달음도 가졌지만, 책 자체에 대해 한 마디는 해야겠다. 번역이 좀 그렇다(장별로 번역의 편차가 심하고, 어떤 장은 냉정하게 얘기해서는 번역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은 그렇다치지만, 너무 많은 오자는 이 책을 만들고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의심을 하게 한다. 좋은 책을 내놓고, 읽을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지만, 기왕에 이렇게 좋은 책에 대해 좀 더 꼼꼼했으면, 좀 더 정성을 들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좋은 책이라 그 점이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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