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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Feb 24. 2021

찾아가서 감상하는 예술이 진짜

마틴 게이퍼드, 《예술과 풍경》

열아홉 꼭지의 글.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는 그 열아홉 꼭지의 글을 쓰기 위해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다(혹은 그 여행의 결과로 열아홉 꼭지의 글이 나왔다). - “이 책은 내가 본 것과 내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 즉 미술가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서술한 여러 여행에서 이 둘은 거의 함께한다.” (13쪽)

그래서 이 글들은 가벼운 미술평론이기도 하고, 인터뷰집이기도 하고, 또한 여행기이기도 하다(중국과 일본, 인도에서의 당혹스러운 경험들은 바로 여행기가 아니라면 쓸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예술과 여행을 주제로 한 이 책의 기저에 흐르는 마틴 게이퍼드의 예술작품에 대한 소신은 ‘직접’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이나 도판을 통해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직접 그 작품 앞에서 감상하는 것은 다르다. 그도 사진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느린 감상(slow looking)’은 ‘작품 앞에서 가장 잘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보스턴미술관에서 마주쳤던 파블로 피카소, 암스테르담의 미술관에서 압도적으로 느꼈던 렘브란트의 <야경꾼>이었다. 직접 보는 것의 느낌은 역시 강렬했다.


사실 그가 만난 예술가들의 대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이들이다. 그들이 현대 예술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고 하지만, 내게는 낯선 이름들이고 낯선 작품이다(그래서 자주 읽기를 멈추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책에 모든 작품을 사진으로 보여주지 않으니 하는 수 없었지만, 그렇게 찾아보는 것도 일종의 재미다). 역시 낯선 것에서는 쉽게 인식의 고양을 느끼지 못하는 탓인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이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글이다. 내가 많이 모자란 탓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비평가는 하나같이 미켈란젤로보다 라파엘로가 더 뛰어나다고 이야기했다. 미켈란젤로가 근육질의 남성 나체에 특화되었다면, 라파엘로는 풍경화, 인물화, 세련된 인물들의 조화, 귀여운 여자까지 모든 것을 잘 그렸다. 어떤 16세기 자료에서는 라파엘로가 그린 인물이 신사라면, 미켈란젤로의 인물은 근육질의 짐꾼 같다고 불평했다. ... 미켈란젤로식의 다부진 타이탄은 21세기 개인주의 시대의 문화에서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108쪽)

“”모든 화가는 자기 자신을 그린다“는 레오나르도의 유명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종종 회자된다. 그는 이 말을 노트에 일곱 번이나 언급했는데, 때로는 인정하는 투로, 때로는 경계하는 투로 적었다. 어쩌면 멋을 부린 세련미와 중성적 매력을 갖춘 레오나르도가 자신에게 취해 그림 속 여인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132쪽)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무엇을, 작은 것이라도 배운다면 그런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에서 나온다.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나는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브랑쿠스의 <끝없는 기둥>의 아득한 감동을 간접적으로라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작품 자체로 가장 인상 깊은 게, 맨 처음 글에서 소개하는 바로 그 <끝없는 기둥>이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우연에 관한 예술적 관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카르티에브레송을 통해서 강렬한 예술감에 대해서도 몰랐을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 금방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예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은 내 어딘가 깊이 박혀서 어느 예술 작품을 대했을 때 문득 기억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책을 읽는 이유고, 또 예술 작품에 대한 안목을 올릴 수 있는 길이다. 


“미술을 찾아서 멈추지 않는 여행을 떠난다. 많이 볼수록 더 보고 싶어 진다.” (328쪽)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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