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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02. 2021

인간의 지성은 여기까지 왔다

브라이언 그린, 《엔드 오브 타임》


과학자 혹은 과학저자(특히 과학자이면서 과학저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나면 결국은 사상가가 된다. 자신의 분야를 깊게 파헤쳐가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걸 바탕으로 넓혀가게 되고, 넓혀가다 보면 결국 모든 학문은 대체로 다 통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브라이언 그린도 그런 경로를 밟는다. 끈이론 전공자로서 우주론에 대한 심도 깊으면서도 대중적인 저서로 명성을 드높인 그는 이제 ‘빅 히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우주와 태양계, 지구의 탄생을 넘어서 자신의 전공이 아닌 생명, 의식, 종교, 문화의 탄생과 진화에 대해서 다룬다. 자신의 전공이 아니기에 다른 저자들에 의존하면서 논의를 이어가지만, 분명 뿌리는 물리학, 그것도 양자역학, 입자론 등이다. 즉, 생명이나 의식 등은 기본 입자의 물리적 작용이라는 것이다. 생명을 달리 볼 수는 없을까 여러모로 생각해보지만 결국은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지 않나 하는 물리학자의 고민이 잔뜩 담겨 있다.


그런 고민이 극대화된 부분은 ‘자유의지’에 대한 부분이다. 자유의지는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고, 지금도 논란인 주제인 만큼 브라이언 그린도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물리학만으로는 주관적인 느낌을 설명할 수 없다”라고 하지만 그의 결론은 자유의지 역시 “독특한 입자 배열”이 만들어낸 물리적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이나 의식이 단순히 입자 배열로 환원되면 생명의 신비는 사라질까? 하지만 브라이언 그린은 그 순간 태세를 전환한다. 바로 그 물리학이 형언할 수 없이 신비한 의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생명은 더욱 경외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입자 배열이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배우고, 종합하고, 상호 작용하고, 반응하면서 나의 개성을 나에게 각인시키고, 내가 취하는 모든 행동에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라고 결론을 맺는다. 어쩌면 타협 같아 보인다. 물리학자로서 생각하기에 아무리 봐도 모든 게 입자로 환원될 수 있으니 자유의지 같은 것은 없어 보이는데, 인식하는 나의 자유를 부정할 수도 없다. 그런 고민의 결과가 저와 같아 보인다. 물리학자로서 최선의 결과로도 보인다.


종교도, 문화도 그렇게 물리학자로서 해석하던 브라이언 그린은 느닷없이 우주의 종말로 관심을 돌린다. 그냥 인류의 종말이라든가, 지구, 태양계의 종말이 아니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시간을 두고 우주가 어찌 될 것인지를 물리학적으로, 수학적으로(물론 수식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예측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인간이 아닌 ‘사고하는 존재’(thinker)의 운명에 대해서 사유한다. 우주가 영원하지 않은 만큼 사유하는 존재 역시 유한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 유한하지 않은 존재의 종말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나는 물론,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매우 높다는 얘기는 거의 100%라는 얘기다) 과연 그런 사유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하다. 인간의 존재 영역, 혹은 인간이 진화한 존재의 영역을 넘어선 우주 범위에서 사고하는 것이 어떤 겸손함을 줄 수는 있다고 보지만, 그건 사실은 겸손함의 범위마저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우리가 찰나를 살고 있다는 인식을 주는 브라이언 그린의 설명은 (그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정말 생명, 의식, 문화 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새삼 인식하게 한다. 그런 것을 인식하고 설명하고자 하며, 더욱이 상상도 못 한 시간의 범위에서 우주의 종말까지 예측하는 상황은 더욱 그렇다. 그도 그렇고, 책의 소개에서도 이 책에 대한 설명에서 어떤 허무함이라든가, 무상함 같은 단어를 쓰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경외라든가 하는 단어가 더욱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본다.

비록 모든 사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지성은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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