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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02. 2021

고전 읽기 가이드

박균호,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


고전은 대체로 쉽지 않다. 물론 고전의 범위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서 그 정도가 달라질 수도 있고, 가끔 매우 재미있게 읽게 되는 고전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어느 정도 독서력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고전이 쉽지 않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나는 애써 ‘어렵다’보다는 ‘쉽지 않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내 나름대로는 그 느낌이 매우 달라 보여서다. 어렵다고 했을 때는 애당초 시도해보지도 않을 것 같고, 쉽지는 않다고 했을 때는 그래도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서 그렇다).


많은 대학과 매체에서 추천 도서라고 해서 올려놓는 도서들이 그런 고전들인데, 솔직히 말해서는 추천 도서 선정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도 없고, 그런 추천이 오히려 읽으면 안 되는 도서를 골라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그렇게 의심쩍은 추천에도 불구하고, 고전의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유는, 그 작품 속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고전을 읽으라고 한다.


그럼 어떻게 고전을 읽을까? 그냥 어떤 대학(이를테면 서울대?)에서 추천한 목록을 검색해서 무작정 읽으면 될까? 그런 무식한 방법을 택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방법으로라도 어느 정도 지속한다면 그럭저럭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 중 아흔아홉은 한두 권 읽다 나자빠질 것이 분명하다. 여행에 가이드가 필요할 때가 있듯이(특히 초보 여행자이거나, 알지 못하는 곳을 여행하거나, 혹은 편한 여행을 위해서는), 책읽기, 특히 고전 읽기에 가이드가 필요하다. 이제 진지한 책읽기를 시작해야 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그게 어떤 형식이든 그렇다. 나의 경우에는 아버지께서 취향 없이 외판원에게 넘어가서 들여놓은 많은 전집들이 그런 가이드 구실을 했지만, 지금은 많은 책들이 그런 가이드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박균호 선생의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도 그런 가이드다. 스무 개의 고전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중요한 것은 그 목록이 아니다. 그냥 여기 소개한 고전을 읽으라고 들이미는 것도 아니고,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처럼 끝까지 읽지 않고도 책을 읽은 채 할 수 있게 책을 요약해주는 것도 아니다(물론 요약은 있다). 책의 가치에 대해서 상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책들이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고전은 바로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한 가지를 골라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그러니까 어떤 고전이 좋다고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고전을 통해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책이다. 여기의 고전이 아니더라도 다른 고전, 아니 고전이 아닌 책을 읽더라도 질문을 찾아내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훈련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던지는 생각거리, 질문만이 소개한 고전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이고 질문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키우도록 하는 ‘첫’ 걸음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게 가이드의 역할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책 광고 같다. 그렇다. 나의 이 리뷰는 책 광고다(노골적이지 못한 것은 나의 소심함 때문이다). 좋은 책은 이렇게 광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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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여기에 소개한 고전 가운데 처음 듣는 것도 있다. 안토 체호프의 단편 <내기>, 워싱턴 어빙의 《스케치북》이 그렇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 장 그르니에의 《섬》, 루소의 《에밀》, 플로베르의 <애서광 이야기>, 《히포크라테스 선집》은 읽어보지 못했다. 또 어린 시절 요약본, 혹은 동화로 읽거나, 영화 등으로 접한 것도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겔뢰프의 《닐스의 신기한 여행》,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아주 명확하게 그 작품에 대해서 스스로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책에 대한 서술에 대해선 조금 토를 달고 싶긴 하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정도다. 장담컨대 조만간 여기 소개한 책 중 한두 권은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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