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Mar 07. 2021

살아가는 일과 책을 잇다

박균호, 《독서만담》


박균호 선생의 책을 거꾸로 읽고 있는 셈이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 이어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을, 그리고 이제 《독서만담》이다.


그런데 ‘만담(漫談)’이라니, 문득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장소팔, 고춘자. 어린 시절 흑백 TV로 보던 둘의 대화에 배를 쥐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웃긴 이야기를 만담이라고 했다(실제 정의로도 틀리지 않는다). 이게 독서에 어울리는 걸까? 웃기는 책이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독서란 시끌벅적한 행사라기보다는 조용한 행위이고, 또 음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책에 관해서 도대체 어떤 재미난 얘기를 하길래 ‘만담’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결국은 책에 관한 얘기로 넘어가지만, 이 ‘만담’은 책에서 시작하지 않고, 박균호 선생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주로는 아내와의 냉전, 그리고 이어지는 화해라는 이름의 패배. 딸에 대한 아빠의 귀여운 시기 등등. 가족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인 셈인데, 거기에 책이 끼어든다. 혼자 쓴 글이니, 결국은 혼자서 하는 이야기 같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항상 상대가 있고, 그 상대와의 상황과 주고받는 이야기가 글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홀로 하는 독백도 아니거니와, 그 이야기들이 슬며시 짓는 미소에서 또 어떤 경우에는 박장대소까지 이르게 하니 ‘만담’이라는 제목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닌 셈이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책 이야기로 넘어간다. 무척 익숙한 패턴이다. 어디 다른 책에서 이런 형식을 많이 봐왔다는 뜻이 아니고, 내게 익숙하다는 얘기다. 박균호 선생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어쩌다 책의 인간이 되어버린지라 아내나 딸을 비롯하여(이상하게 아들한테도 그렇게 잘 안되긴 한다), 주위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면 꼭 책이나 책 속의 내용을 끄집어내게 된다. 소수의 사람들은 끝까지 들어주지만, 다수의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아차 실수했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꺼낼 기회를 주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표정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더 많은 미소를 띠었다면 바로 그런 상황들이 떠올라서이다.


박균호 선생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돈이 되지는 않는다’는 명제를 두고 머리말을 썼고, 3장으로 나뉜 책의 첫 번째 장의 제목을 “하나도 쓸모 없는 책 이야기”라고 지었다. ‘돈’이나 ‘쓸모’ 같은 걸 생각하면 박균호 선생 같이 책을 읽고, 책을 모으지는 않았을 거다. 책이 살아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은,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겠거니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읽지 않는 내게 그다지 내키지 않는 질문이다. 읽다보니 그게 쌓여 어떤 도움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걸 목적으로 삼지도 않았었으니 그걸 답이라고 내놓을 수도 없다. 그럴 때면 가장 가성비 높은 오락거리 중 하나라는 취지의 답을 한다. 가끔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고 스스로 답을 하기도 한다. 지금 내 나이에 그런 느낌이 얼마나 소중한 줄 아냐고 속으로 항변하기도 한다. 박균호 선생은 이런 나의 마음을 잘 알 거라 확신한다.


책을 통해 무슨 일을 배우는 걸 종종 한낱 웃음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이를테면 “책으로 연애를 배웠어요” 같은 것 말이다). 웃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속상하다. 웃음을 주는 책이라면 모를까, 책 자체가 그런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한번 돌아봐서 생각하고, 반성하고, 혹은 기뻐하고 되새김질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실수로 가득차고, 종종 잘못으로 점철되는 삶인데, 그래도 우리는 책을 읽고 반성한다. 늘 옳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자문할 수 있다. 책을 통해 배우는 게 아니라, 책을 통해 생각한다.

박균호 선생의 책은 그 과정을 엿보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름다운 책에 관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