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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06. 2021

아름다운 책에 관한 이야기

이광주, 《아름다운 책 이야기》

“책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웠다.” (117쪽)

문자가 발명되고 책이란 형태로 인류의 기억이 기록되기 시작한 초기,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서부터 삽화가 등장한다. 삽화, 즉 illustration이라는 단어가 ‘빛을 밝힌다’라는 뜻을 갖듯이 삽화는 책을 밝히는 역할을 해왔다. 책은 그렇게 처음부터 아름다움이 기본적으로 깔고 있었다.


이광주 선생은 이렇게도 쓰고 있다.

“책을 아름답게 만든 시대는 좋은 시대, 참으로 좋은 시대이다.” (312쪽)

1890년대 아름다운 책을 만들었던 윌리엄 모리스에 대한 얘기를 마무리하면서(그리고 책을 마무리하면서) 쓴 문장이다. 이광주 선생도 의식했겠지만 그 시대는 ‘벨 에포크’였다. 아름다움, 내지는 고귀함에 대해 집착했던 시대. 물론 그 아름다움과 고귀함은 소수의 특정한 계급과 계층에 한정된 것이긴 했겠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분위기는 그랬다. 그래서 수도원 등에서 제작되었던 중세 사본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의 아름다움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책들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더 눈이 가는 것은 화보를 방불케 하는 사진들이다. 화려한 문자와 그림들, 테두리, 장식, 표지. 실제로 이런 책들을 눈 앞에 두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숨이 막힐까? 어쩌면 훔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까?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란 말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물론 이처럼 ‘비싼’ 책도둑은 ‘책’도둑이 아니라 책‘도둑’으로 취급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런 정도의 이성은 있기에 아마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윌리엄 모리스라는 인물에 대한 감탄사다. 책의 거의 절반이 윌리엄 모리스와 켐스콧 프레스, 그리고 그가 만든 책에 관한 얘기다. 고대부터 중세를 거치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이어진 아름다운 책의 계보에 대한 언급은 윌리엄 모리스라는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결국 윌리엄 모리스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책인 셈이다. 그래서 윌리엄 모리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그는 그냥 ‘아름다운 책의 제작자’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도 많은 분야에서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아름다운 책’은 어떻게 이어졌는지, 현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궁금한데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쉽다.


읽는 내내 ‘아름다운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이 책에 화려하게 소개되는 책들은 아름답다. 그런데 그런 것만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화려한 표지, 컬러 삽화 등등이 없더라도 책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모양보다 내용이 훌륭해야 아름답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책 자체가 참 좋을 때가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잘 읽히는 서체, 오자가 없고, 겹쳐져 인쇄되지 않은 깔끔한 문자들,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여백, 적당한 줄 간격. 이런 책을 만나면(사실 그런 책이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다) 책 읽는 내내 눈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다. 지금까지 의식하지는 못했었지만, 어쩌면 그런 책들도 아름다운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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