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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05. 2021

베르됭 전투, 결말 없는 전쟁의 결말 없는 전투

앨리스터 혼, 《베르됭 전투》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장은 프랑스였다. 전쟁 초반 독일군은 연승을 거두며 파리 인근까지 진출했지만 마른 전투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다. 참호전으로 전쟁은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 상황에서, 독일의 입장에선 설상가상으로 연합국의 경제 봉쇄 조치로 전황을 타개할 필요를 느낀다. 독일군 총사령관 팔켄하인은 베르됭을 주목한다. 그리고 2016년 2월 21일 공격을 개시한다. 그렇게 역사상 가장 처첨한 전투 중 하나인 베르됭 전투가 시작되었다(독일군의 계산은 베르됭으로 프랑스군을 유인해서 전력을 완전히 고갈시킨 후 파리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즉, 말려죽이는 전략이었다).


5월, 6월까지 베르됭은 거의 돌파될 듯했다. 사실 그때까지 버틴 것이 프랑스가 베르됭을 사수하고 반격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지만 엄청난 인명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인명 손실은 프랑스군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독일군도 거의 프랑스군에 필적할 만큼 사상자가 났고, 결국엔 베르됭 전투 이후 전체 전쟁 차원에서도 수세에 몰리고 전쟁에서 패배하고 만다.


베르됭 전투는 그렇게 언제 발발해서 어떤 세부적인 전투가 있었고, 몇 명이 죽고, 어떻게 해서 끝났으며, 그 영향은 어떤 것인지 요약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전쟁, 전투가 그렇다. 하지만 모든 전쟁, 전투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전쟁에서 한 사람의 목숨은 대부분 숫자 1이고, 수만 명의 죽음 속에선 거의 의미도 갖지 못하지만, 그렇기에 전쟁은 비극적이다. 베르됭 전투는 그 비극성을 상징하는 전투이면서 ‘최악’의 전투였다.


“어떤 전투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독일군이 볼가강에 도착한 순간부터 파울루스가 항복할 때까지 겨우 5개월 동안 이어졌다. 베르됭은 10개월이었다. 솜강 전투가 베르됭 전투보다 많은 사망자를 냈지만 참전 병사 대비 사상자 수를 보면 제1차 세계대전의 모든 전투들 중에 베르됭 전투가 현저히 많다. 전장 면적 대비 사망자 수도 마찬가지다. 베르됭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축소판이었다. 그 전쟁이 일으킨 모든 공포와 영광, 용기와 무익함이 강도 높게 드러난 곳이 바로 베르됭이었다.” (518~519쪽)


베르됭 전투 이전의 상황에서 전투 이후의 전개까지 다루고 있는 앨리스터 혼의 《베르됭 전투》는 다채롭다. 다채롭다는 것은 어쩌면 화려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여기서 다채로움은 다양한 측면에서 전투를 바라보고 서술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투의 전개 양상을 서술하면서는 전체를 조망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과 동작을 따라가기도 한다. 전투를 지휘했던 프랑스군과 독일군의 장군 들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일개 전투병의 일기를 통해서 전투의 상황과 느낌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죽음에 무감각해질 수 있는 순간 다시 개인의 죽음에 주목하며 전쟁의 참혹함, 비참함을 놓치지 않고 전달하고 있다.


앨리스터 혼은 이 책의 제목을 “The Price of Glory”, 즉 “영광의 대가”로 지었다. 프랑스군은 이 전투를 ‘영광’스러운 것으로 포장했다. 베르됭에서 독일군을 몰아냈고, 결국은 전쟁에서 승리했으니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앨리스터 혼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베르됭 전투에 대해 “결말 없는 전쟁의 결말 없는 전투이자 불필요한 전쟁의 불필요한 전투, 승자 없는 전쟁의 승자 없는 전투”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베르됭 전투를 영광스런 승리의 기억으로 삼은 프랑스는 그 이후 오히려 그 덫에 갇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처참한 패배의 나락으로 빠지기도 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재미를 위해서일 수도 있고,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공통적인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다. 특히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가 있다면 우리는 그 기억을 통해서 배운다.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서, 혹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베르됭 전투를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한 앨리스터 혼의 관점은 분명하다. 그런 역사는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더 그 역사의 비참함과 무가치함을 필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기>

베르됭 전투의 영웅은 패탱 장군이었다. 그런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비시정부의 수반이 되어 부역자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사형을 선고받았다(사형 당하지는 않았지만). 앨리스터 혼은 패탱에 대해 다소 온정적이다. 그가 프랑스인이 아니라 영국인의 입장에서 패탱을 봐서 그럴 수도 있고, 패탱을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가 있어서일 수도 있다. 앨리스터 혼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패탱에게 그의 참모 세리니가 했던 말을 두 차례나 인용한다. “장군은 프랑스인에 관해서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프랑스에 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패탱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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