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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08. 2021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였지만...

심우찬, 《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벨 에포크’. Belle epoque. 그냥 우리말로도 뭔가 우아한 느낌을 주는 이 말은 번역하면 그냥 ‘좋은 시대’이고, 좋은 시대는 어떤 지역이든, 어떤 시대이든 그런 시대를 얘기할 수 있겠지만, 다른 것 없이 그냥 벨 에포크라고 하면 바로 그 시대다.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시대 말이다. 그런데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아직 그렇게 부르지 않았었다. 나중에 보니 어떤 특징을 가진 시대였고, 또 좋은 시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시대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나?

심우찬에 따르면 벨 에포크는 “인류가 오로지 아름다움과 기쁨을 위해 살았던” 시대다. 그 아름다움과 기쁨은 다양한 방면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최초의 대중 스타이자 뮤즈였던 사라 베르나르가 등장한 시대였으며, 르네 랄리크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아르 누보를, 그리고 아르 데코를 창조한 시대였다. 알폰스 무하, 혹은 뮈샤가 사라 베르나르를 모델로 포스터를 만들면서 무하 스타일이 등장한 시대였고, 최초의 스타 사진작가 펠릭스 나다르가 셀럽들의 사진을 남긴 시대였다(나는 처음으로 내가 자주 사용하는 루이 파스퇴르의 사진이 바로 펠릭스 나다르가 찍은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보들레르와 오스카 와일드가 유미주의, 혹은 탐미주의를 내세워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하였고, 생상과 베를리오즈, 드뷔시와 같은 프랑스 음악가들이 독일 음악을 극복해가던 시대였으며,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남긴 시대였다. 그리고 그레퓔 백작부인이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퀴리 부인을 후원하던 시대였다.


또한 만국박람회가 여기저기서 개최되고 봉 마르셰를 시작으로 백화점이 소비의 시대를 열었고, 루이 뷔통이 여행용 가방을 제작하면서 명품의 시대, 그리고 여행의 시대를 선언한 시대였다. 또한 드레퓌스 사건의 시대이기도 했다. 브랜드를 내세운 삼페인이 등장하였고, 발레 뤼스가 새로운 발레를 선보인 시대이기도 했다. 즉, “뮤즈와 예술가, 살롱의 시대, 셀럽과 스타가 탄생하고, 백화점과 루이 뷔통과 샴페인이 브랜딩의 태동을 알리던 인류의 전성시대”이다.


심우찬은 많은 자료를 통해서 이런 벨 에포크를 정리하고, 또 찬미하고 있다. 누구라도 그 시대로 돌아가서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할 만큼 매력적인 시대로 그리고 있다.


자, 그런데 이제 돌아서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정말 ‘좋은’ 시대였나? 누구에게 좋은 시대였나?

그 화려한 시대에는 너무나도 뚜렷한 어두운 이면을 갖고 있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던 시대에 환경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 조건도 열악했다. 벨 에포크의 아름다움을 누리던 이들은 그 열악한 노동 조건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아니 심지어 사라 베르나르 같은 이도 여성이 비참한 처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쿠르티잔(courtisane), 고급 매춘부의 딸이었고, 그런 운명을 벗어나고자 수도원에 들어갔고, 또 배우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그렇게 성공한 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가 찬양하는 벨 에포크의 아름답고 화려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벨 에포크가 남긴 것들을 모두 폄하하지는 않는다.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라도 그 시기의 건물들과 미술품들, 공예품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심우찬은 그 아름다움에 더 집중했을 뿐이고, 그와 같은 예술의 전성시대, 예술이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벨 에포크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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