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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08. 2021

한 마리 개가 전하는 위로

하세 세이슈, 《소년과 개》

 

개를 키운 적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즈음 어머니가 어디선가 데려온 백구였다. 진돗개 혈통이 섞였다고 했고, 무척 귀엽고 잘생긴 강아지였다. 밤늦게 공부하다 종종 밖에 묶어 놓은 강아지와 얼굴 보였다 말았다 하는 놀이를 했다. 갸우뚱거리는 강아지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무슨 문제인지는 몰랐지만 강아지는 짖지를 못했다. 그러니 집 지키는 목적으로는 영 빵점이었지만, 사람 말은 잘 들었다. 시간 되어 대문을 열고 풀어놓으면 밖으로 나가서 어디선가 용변을 보고 들어왔고, 놀다가도 부르면 멀리서 쏜살같이 달려왔다. 첫해에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한다고 서울로 올라왔다 고향으로 내려갔을 때 강아지는 훌쩍 커서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를 잊지는 않았었다.


그 개는 어느 날 사라졌다. 어머니는 아마도 개장수가 끌고 갔을 거라고 했다. 짖지도 못하니, 끌고 가는 걸 알아차릴 수가 없었으리라. 그 후로 어머니는 개를 키우지 않으셨다. 나도 그렇다. 아들 녀석이 개를 키우자가 가끔 졸랐지만, 나도, 아내도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었다. 개에 대한 추억은 그 정도다.


그런데 그 정도의 추억임에도 내 기억 속에는 아주 선명하고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요새 TV에서 방영하는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그 적막한 밤, 마음도 황량한 시절에 위로가 되어준 건 바로 그 강아지였으니.


하세 세이슈의 《소년과 개》은 다몬이라는 이름의 개와 그 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주인을 잃고 헤매는 다몬은 누군가를 찾아 떠난다. 그러면서 한 남자를 만나고, 외국인 도둑을 만나고, 어떤 부부를 만나고, 매춘부를 만나고, 그리고 사냥꾼이었던 노인을 만난다. 모두 어두운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다몬을 만나면서 행복해했고, 그리고 죽음을 맞이했다. 개는 죽음을 앞둔 이들 앞에 나타나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었다. 그들은 개 옆에서 죽어갔지만 개에게서 구원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소년을 만난다. 애초에 다몬은 그 소년을 찾아 헤맨 것이었고, 일본 거의 전역을 헤매다닌 지 5년만의 일이었다. 대지진으로 인한 충격으로 말도 잃은 소년은 다몬을 만나고 웃음을 찾고 말을 찾는다. 그러나...


개가 주는 따뜻한 위로를 주제로 한 소설이지만, 단 한 번도 개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그 개로 위로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개를 바라보고 생각한다. 그게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개와의 소통한다고 개가 사람 대신으로 만들어버리지 않고, 그냥 개로 바라보고 개로 생각하는 것이다. 개가 선사하는 위로이지만, 결국은 위로받는 마음은 사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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