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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09. 2021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1988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가 《방과 후》로 데뷔한 게 84년이었으니 아직 신인 작가의 범주에 놓였을 때의 작품인 셈이다. 일곱 번째 소설이란다. 매년 몇 편의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번역되고 있기 때문에 한 해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참 많이 만난다(누군가 그 목록을 잘 정리해주었으면 좋겠다. 원작과 번역 작품의 순서 같은 걸 말이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이 작품을 읽을 때 지금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소설에는 사회 문제가 전혀 없다. 어느 시점부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분명히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고 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거기에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각과 함께.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사회 비판이라든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시선이 별로 없다. - 그 이유는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1988년. 일본의 거품 경제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다.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별로 힘을 쓰지 못했을 때였고, 그런 분위기가 추리소설이라는 어쩌면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를 띨 수 밖에 없는 장르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이야기의 흐름도, 문장도 조금은 어색하다. 이를테면 “본인들은 알지 못했짐나, 그날 밤 교코와 시바타는 호텔 앞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다.” 식의 설명 투는 이후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거의 보지 못했던 문장이다. 거기에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상황도 조금은 어색하다. 물론 처음부터 상황을 만든 후 작품을 썼겠지만, 어쩐지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트릭의 교묘함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건의 전개와 함께 드러나는 인간 관계, 사회의 모습 등으로 그의 소설은 비록 추리소설이지만, 추리소설 이상의 무엇이라고 느껴지기에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는 아직 그런 면모가 드러나기 전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변화에 관심이 깊다면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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