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Mar 19. 2021

세뇌인가, 선택인가

롤라 라퐁, 《17일》


‘스톡홀름 증후군’. 은행 강도가 직원을 인질로 삼았던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 사건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 내지는 동조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에 해당하는 사건은 많지만 가장 유명한 사건은 아마도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 사건일 것이다.


미국 언론계의 백만장자인 허스트 가문의 딸인 퍼트리샤 허스트는 19살이던 1972년 2월 4일 저녁 9시 20분경 다니던 버클리대학교 기숙사에서 ‘공생해방군(SLA)’에 납치된다.

이후 SLA는 자신들이 퍼트리샤를 납치했다고 밝히며 몸값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납치 약 60일 이후 4월 15일 퍼트리샤는 자신을 납치했던 이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하이버니아 은행강도사건 현장의 CCTV에 소총을 든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아연실색하거나 경악을 금치 못하거나, 혹은 그녀를 응원했다.

5월 17일에는 FBI가 SLA의 아지트를 급습하고 범인 6명을 사살하지만, 퍼트리샤는 도망에 성공한다(외출 중이었다고 한다).

6월 7일. LA의 방송국에 카세트 등을 보내며 퍼트리샤는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의 동지와 같은 이름인 타니아로 개명했다고 천명하였고 SLA의 동지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9월 18일. FBI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총격전 끝에 퍼트리샤가 체포된다.

이어진 재판에서 퍼트리샤는 은행강도죄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고 35년형을 구형받았으나 로널드 레이건, 존 웨인 등의 탄원서 등에 힘입어 7년형을 선고받았다. 22개월 후 15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되었고, 2001년 1월 20일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그녀를 특별 사면 조치한다.


롤라 라퐁의 《17일》은 바로 이런 줄거리를 지닌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시간 배경으로는 퍼트리샤가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고, 공간적으로는 프랑스 랑드 지방의 소도시다. 그리고 두 여성이 중심에 있고, 그 두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또 한 여성이 있다. 퍼트리샤의 전향과 범죄 행위가 SLA의 세뇌에 의한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에게 의뢰받아 보고서를 작성하는, 미국인 교수 진 네베바(그는 1년간 프랑스의 한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퍼트리샤와 같은 나이로 네베바에게 고용되어 17일간 퍼트리샤에 관한 기록을 검토하며 그 심리를 헤아리는 역할을 맡은 프랑스인 비올렌. 마지막 여성은 네베바가 떠난 후 나이가 든 비올렌에게 영향을 받고, 나중에 미국의 대학으로 네베바를 찾아갔으며, 네베바와 비올렌에 대해 쓰고 있다.


소설은 주로 네베바와 비올렌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중심이다. 급진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고 반전 집회로 대학에서 쫓겨나기도 했던 네베바는 처음에는 10대의 부유한 여성 상속자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기간에 완전히 변신하여 자신의 의지로 혁명가(퍼트리샤의 표현으로는 ‘도시 게릴라’)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올렌과의 작업을 통해 점차 퍼트리샤의 선택이 그녀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일 수도 있음을 깨달아 간다. 그와 함께 비올렌도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각성해간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은 사실은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난다. 즉 한 여성이 돌봄의 객체에서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주체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SLA는 그 계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뇌라고 했지만, 정작 그녀는 납치 전 20년 간의 삶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도록 만든 세뇌였고, SLA의 동지와 함께 하면서 비로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관해 소설은 명확한 관점을 보이지는 않는다. 네베바는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비올렌과의 관계를 끊는다. 네베바의 보고서는 재판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네베바는 대학에서 굳건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올렌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의 경로를 변경시킨 네베바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네베바와 비올렌의 관계를 단절시킴으로써 오히려 비올렌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구축한 것이란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네베바를 통해 “단순한 이야기를 섣불리 믿으면 안 돼요.”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하는데, 마치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인 듯 하다. 모든 사회 현상은 단순하지 않으며, 단순하게 정리된 이야기는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롤라 라퐁이 어떤 것에 중점을 썼는지와 상관없이 많은 평자들은 이 소설을 페미니즘과 연관시키는 것 같다. 즉, 퍼트리샤 허스트, 네베바, 비올렌, 그리고 작중 화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면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퍼트리샤 허스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변신을 하게 되었는지가 더욱 관심이 간다(일반 독자라면 그러지 않을까?). 그리고 나아가 그 이후 이야기. 감옥에서 나온 이후 퍼트리샤 허스트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그녀의 신념은 그대로 지킬 수 있었을까? (찾아볼 수 있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어쩌면 실망할 것 같아서.)



작가의 이전글 진화라는 오래되고, 늘 새로운 아이디어의 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