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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17. 2021

진화라는 오래되고, 늘 새로운 아이디어의 역사

존 그리빈 • 메리 그리빈, 《진화의 오리진》


진화 혹은 진화론 하면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찰스 다윈을 떠올린다. 그런데 ‘진화(론)=찰스 다윈’이라는 공식(?)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정도에는 매우 큰 편차가 있다. 우선 찰스 다윈이 처음으로 진화에 대해서 생각했고, 진화론을 주장했다는 것으로 저 공식을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찰스 다윈이 진화에 대해서 처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최초로 진화론에 관한 논문, 또는 책을 썼다는 것으로 여긴다. 사실 많은 경우 마치 진화라는 아이디어를 찰스 다윈이 맨 처음 생각해냈거나, 그 이전에는 매우 사변적인 진화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주장했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진화에 대한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또 찰스 다윈 이전에도 여러 과학자들이, 내지는 저자들이 생물의 진화를 확인하고, 이에 대해 책을 출판해왔다. 찰스 다윈이 한 일은 바로 진화의 메커니즘, 즉 자연선택이라는 진화가 일어나는 방식을 아주 실증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해낸 일이다. 즉, ‘진화(론)=찰스 다윈’이라는 공식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무 단순하게 진화론과 찰스 다윈을 이해하는 것이고, 또 어쩌면 오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사실 저런 등호(=)로 표시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다. ‘자연선택=찰스 다윈’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는 있어도 여기에도 많은 게 빠져 있는 것 같으니).

 

존 그리빈과 메리 그리빈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그의 진화에 대한 혁명적 생각이 단절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아이디어가 그 시기, 그에게서 꽃을 피운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진화의 오리진》이라는 책을 썼다. 즉, 진화란 무엇인가, 진화론, 내지는 자연선택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혹은 (사실은 가장 피곤하고 헛된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정말 진화는 일어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보다는 진화라는 생각이 어떻게 기원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발달해서 다윈과 월리스에게로 이르렀는지, 그리고 다윈 이후의 진화론은 어떤 발견을 통해서 확립이 되었는지에 대해 쓰고 있다.

 

과학의 전통을 찾는 이야기가 대체로 그렇듯이 진화에 관해서도 엠페도클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한다(물론 둘의 관점은 거의 정반대라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중국의 장자와 함께 (역시 서양의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이슬람의 과학을 거친다. 그리고는 로버트 훅을 비롯하여 지질학의 시대를 연 허튼과 라이엘 등에 이르고(여기까지 이르기 위해서도 정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다윈과 월리스까지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맬서스의 《인구론》의 역할을 강조하지만(여기서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존 그리빈과 메리 그리빈은 그보다는 지질학의 발달이 가져온 ‘시간의 선물’을 더 강조한다. 즉 지구 상에서 진화라는 과정이 펼쳐질 수 있는 긴 시간의 척도라는 선물을 다윈에게 선사한 것은 다름 아닌 ‘동일과정설’의 허튼과 라이엘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윈과 월리스가 이 이야기의 중심인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도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떻게 자연선택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는지, 그 자연선택이라는 생각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보여주지만 더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은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발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다윈이 월리스의 권리를 야비하게 빼앗았다고 하는 데 대해서 명백하게 반론을 제기하고 있으며(가장 확실하게는 월리스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다윈과 월리스가 서로 진화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접하는 흥미로운 얘기 중 하나는 다윈의 《종의 기원》은 여러 차례 개정판을 냈는데, 이 책을 번역할 때 주로 초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윈이 제기되는 반론에 답하느라 수정된 형태의 라마르크주의를 동원하기도 했기 때문에 다윈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된 것은 바로 초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윈은 조금씩 흔들리기도 한 반면, 월리스만큼은 나중에 심령술에 빠져 과학적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순수한 자연선택주의를 고수했고, 그래서 ‘다윈 자신보다 더 다윈주의자’였다.

 

사실 다윈과 월리스에 대한 얘기를 하면 진화론의 역사는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바로 맨 처음의 공식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다). 하지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은 그 이후 멘델의 유전 법칙과 DNA (구조) 발견 등으로 더욱 명확해졌다. 이 과정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진화라는 아이디어가 다윈에 이르기까지도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온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다윈 이후에도 더욱 더 많은 과학자들이 축적시켜온, 그리고 축적시켜가는 발견이 있었기에 더욱 확실해지고, 또 더욱 많은 것을 설명하고, 또 우리가 그 아이디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다윈 이후의 유전학 등에 대한 이야기는 진화에 관한 책에서만 다룰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20세기 과학 중에서도 생물학(특히 분자생물학)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 뒷 얘기까지도 친절하게 속삭여주고 있어 무척 재미있다.

진화가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이제 논쟁거리가 아니다. 그건 다윈이 느닷 없이 떠올린 아이디어도 아니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음모도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발달시켜온 과학의 아이디어이자 발견이며,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발전시켜나갈 학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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