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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26. 2021

새뮤얼 존슨과 '더 클럽(The Club)'

레오 담로슈, 《더 클럽》


18세기 유럽, 특히 영국을 다룬 책을 읽다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새뮤얼 존슨. 꼭 그때만도 아니고, 영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가 쓴 글, 그가 한 말은 종종 인용된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해서 길게 소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주로는 사전 편찬자. 혹은 좀 더 넓은 의미로 작가 등으로 소개되고, 어떤 경우에는 대단한 근시의 소유자였던 것이 그를 소개하는 멘트일 때도 있다. 새뮤얼 존슨이 그렇게 의미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만큼 그가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이들이 별 것 아닌 양 그의 말이라고, 글이라고 인용할 리는 없다.


새뮤얼 존슨은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존슨 박사라 불렸지만, 옥스퍼드를 1년 만에 그만 두었고(학비가 없었다), 나중에야 그 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희곡과 시로는 성공이랄 수 있는 성과를 얻지 못했고, 비평문을 쓰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혼자 힘으로 《영어사전》을 남김으로써 그를 설명하는 가장 흔한 표현인 ‘사전 편찬자’로서 명성을 드높였다. 그의 글이라고 인용하는 것들은 대부분 《영어사전》에서 온 것이다. 단어를 설명하는 데 있어 다소는 냉소적이었지만, 독창적이었고, 셰익스피어 등에서 예문을 가져옴으로써 나중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선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우울한 인물이었다. 많은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당연히 천부적인 언어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 인물이 대체로 그렇듯이 능숙한 유머 감각이 있었다. 그는 문인을 비롯한 많은 명사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그 우정은 일종의 네트워크였고, 그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것은 당시의 문화 지형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바로 그 네트워크로서 ‘더 클럽(The Club)’이 있었다(Club은 커피하우스나 선술집에서 모임을 갖고 비용을 각자 갹출하는 문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764년 우울증에 빠진 새뮤얼 존슨을 건져내고자 그의 친구이자, 유명한 초상화가, 왕립미술아카데미 총장 조슈아 레이놀즈는 한 모임을 제안했다. 매주 금요일 한 술집(터크즈 헤드 태번)에서 만나 정해진 주제 없이 자유로운 토론 모임을 갖자는 것이었다. 새뮤얼 존슨, 조슈아 레이놀즈, 에드먼드 버크, 에드워드 기번,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 9인이 창립 회원이었던 ‘더 클럽’은 18세기 영국 문화의 지형을 가늠케 할 수 있는 표본과 같은 것이었다.


제임스 보즈웰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귀족이자 판사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골칫덩이였다. 난봉꾼이었고, 런던이라는 왁자지껄한 대도시를 사랑했다. 억지로 변호사가 되고, 정계에 진출하고자 했지만, 그에게 그 방면의 능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능력이 있었다. 그는 매일매일 일기를 썼으며, 그 일기는 매우 꼼꼼했다. 새뮤얼 존슨을 만난 이후, 그의 추종자가 되었다. 그가 지금까지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새뮤얼 존슨의 ‘빠’가 되었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를 아버지처럼 따랐고, 또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기록했다. 그리고 새뮤얼 존슨이 죽은 이후 그의 전기인 《존슨전》을 남김으로써 새뮤얼 존슨과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었다. (제임스 보즈웰은 1773년에야 더 클럽의 회원이 된다.)


레오 담로슈의 《더 클럽》은 바로 그 ‘더 클럽’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이들에 대해 쓰고 있다. 중심은 당연히 새뮤얼 존슨과 제임스 보즈웰이다(제임스 보즈웰이 더 클럽의 중심 멤버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의 기록으로 더 클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후세 사람들이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새뮤얼 존슨과 제임스 보즈웰의 성장과 행보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이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초상화가로 대성공했고, 더 클럽을 제안했던 조슈아 레이놀즈, 훌륭한 웅변가였고, 정치인으로 활약했고 에드먼드 버크, 당시 최고 배우였던 데이비드 개릭, 새뮤얼 존슨의 아낌없는 후원자였던 스레일 부부, 그리고 당시 더 클럽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있는 인물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누구보다도 유명한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와 《로마제국쇠망사》의 에드워드 기번 등이 레오 담로슈가 주목하고 삶을 추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레오 담로슈는 책의 첫머리에 “이것은 비범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쓰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별처럼 빛나는 지식인들이었던 그들은 작은 모임을 통해서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우정을 쌓았다. 그 모임 자체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거기서 나누었던 대화는 그들의 자양분이 되고, 그 모임을 나와서는 영국 문화, 나아가 유럽 문화를 살찌웠을 것이다. 그들에 대해 읽는 것은, 그냥 그 시대를 읽는 게 아니라 그 시대가 그 이후의 시대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책에는 삽화가 많다. 당시 런던 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초상화들이다. 그 삽화들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는 레오 담로슈는 삽화들을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의 중요한 보조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거리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초상화에서도 그 인물의 성격을 알아내고 있다. 프롤로그에 따로 이 삽화들을 많이 실은 이유에 대해 쓸 만큼, 이 책에서 그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그림들만으로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소란스러우며 모순되고 폭력적인 18세기 런던’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새뮤얼 존슨을 비롯한 그가 살아 있던 인물로 되살려내고자 하는 인물들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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