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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23. 2021

"세상은 벌이 없으면 안 돼요."

소어 핸슨, 《벌의 사생활》


사람들이 별로 의식하지 않던 벌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어느 날부터 “벌이 사라진다”는 제목의 기사가 인터넷 포털에 뜨기 시작했다. 주로는 북미 지역에서 나오는 뉴스였지만, (대개 그렇듯이) 곧이어 우리나라도 그렇다는 보도가 나왔고, 개인적으로는 (전혀 전공 분야가 아니지만) 그와 관련된 연구 주제를 평가한 적도 있다.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벌이 사라진다는 게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 의미를 알고 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벌의 존재는 그냥 생태계의 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람의 일, 즉 농업에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것뿐이고,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것뿐이다. 소어 핸슨은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양으로 측정해보면 전 세계 농작물 생산의 35퍼센트가 벌이나 다른 꽃가루 매개자에 의존하는 식물에서 나온다. ... 단순히 음식 종류의 측면에서 보면 비율은 4분의 3이 넘는 것처럼 보인다. 상위 115가지 농작물의 75퍼센트 이상이 꽃가루 매개자를 필요로 하거나 꽃가루 매개자의 혜택을 입고 있다.” (《벌의 사생활》, 245쪽)


소어 핸슨은 대추야자나 바닐라와 같이 사람이 직접 꽃가루받이를 해야 하는 작물의 상황을 봤을 때 벌의 존재는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을 불문하고 약 40퍼센트의 종이 개체수 감소 추세에 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 상황은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소어 핸슨은 그와 같은 벌에 대해 요모조모를 체험하고 기록했다. 우리는 벌이라고 하면 대부분 ‘꿀벌’부터 떠올리는데, 그는 책의 맨 앞(‘지은이 메모’)에 이렇게 적고 있다. “꿀벌이 많이 등장하기는 해도 이 책이 특별히 꿀벌을 다루는 책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분명 꿀벌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꿀벌에 대해서 많이 쓰고는 있지만, 그 밖에도 뒤영벌(이른바 bumble bee라고 불리는), 뿔가위벌, 청줄벌 등 비전문가는 잘 구별할 수 없지만, 분명히 다르면서 또한 생태 역시 아주 다른 벌들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래서 만약 다른 이라면 꿀벌이 꽃의 위치를 알리는 춤이라든가, 벌의 진사회성에 대해서 잔뜩 다루었을지 모르지만(물론 벌의 진사회성의 진화는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다루고 있다), 그것 외에도 벌에 관해서 중요한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소언 핸슨은 책 자체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벌이 어떻게 벌이 되었고, 또한 꽃과 관계를 맺으며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지고(놀랍게도 인류의 진화 초기부터 그 관계를 맺어왔고, 또 많은 영양분을 벌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또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그리고 그 벌의 미래는 어떤 것인지에 관한 것들이다.


그는 벌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전에 매력을 느꼈고, 그 매력을 꼬맹이 아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 벌의 중요성이나 생태에 대해서는 (많지는 않겠지만) 다른 전문가들이 쓸 수 있겠지만, 여러 체험을 통해서 겪고, 알아낸 사실들을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으로 만든 것은 순전히 소어 핸슨의 능력이다. 《깃털》과 《씨앗의 승리》에서 보여준 대로 여기서는 벌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면서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고, 또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깃털》과 《씨앗의 승리》를 통해 이미 소어 핸슨의 팬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벌의 사생활》에서도 확인하는 셈이다.


10여 년 전부터 잊을 만하면 올라오던 벌의 집단 사라짐에 관한 뉴스는 요즘 뜸한 것 같다. 사정이 나아진 것인지도 모르지만(이 책의 마지막에서도 쓰고 있듯이 벌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뉴스로서의 가치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그런 뉴스에 무감각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 벌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적절한 시기에 《벌의 사생활》이란 책을 만난 셈이다. 소어 핸슨과 벌 관찰을 함께 했던 그의 아들 노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은 우리가 없어도 되지만 벌이 없으면 안 돼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된 이 말이 결국은 이 책의 주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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