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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22. 2021

스티브 호킹을 회고함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스티븐 호킹》


스티븐 호킹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1990년이었을 것이다. 서울대 문화관에서 그의 강연이 있었다. 물리학에는 1도 관심이 없었지만 오로지 그를 보기 위해서, 어떻게 강연을 하는지 보기 위해 꽉 찬 강연장을 비집고 들어갔었다. 물론 강연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고, 온갖 기기를 장착한 휠체어에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앉아 띄엄띄엄 이야기를 하던 스티븐 호킹을 기억할 뿐이다. 그때 이미 그는 스타였다. 《시간의 역사》가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였다. 


2003년 칼텍의 이론물리학자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는 스티븐 호킹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스티븐 호킹은 믈로디노프의 《유클리드의 창》과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를 읽고 함께 책을 쓰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스티븐 호킹과 믈로디노프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018년 스티븐 호킹이 세상을 떠나고, 믈로디노프는 호킹에 대한 회고록을 쓰자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이 책을 썼다. 둘이 두 번째 공동 작업이었던 《위대한 설계》를 집필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두고 있지만(첫 번째 작업은 공전의 히트를 친 《시간의 역사》를 쉽게 풀어쓴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였다), 실제로는 호킹의 연구와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기록과 기억이다. 


사실 이미 2013년 스티븐 호킹은 자서전을 낸 바가 있다(《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 까치). 그러니 그의 삶에 대해서 어릴 적부터 연대기 순으로 정리할 필요도 없고, 그에 대한 회고록을 쓰면서 그의 연구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다룰 이유도 없다. 하지만 스티븐 호킹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가 무엇을 연구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쓰지 않을 수도 없으며,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것이 믈로디노프가 스티븐 호킹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쓰면서 어떻게 녹여내느냐인 셈이다. 


그런데 믈로디노프는 파인만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회고록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티븐 호킹에 대해서도 그의 연구 업적과 개인적인 사항을 포함한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 정말 유연하게 쓰고 있다. 어쩌면 스티븐 호킹이 믈로디노프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인연을 만든 것이 바로 이런 것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물론 아닐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우주의 기원과 블랙홀에 대한 연구로 유명해졌다. 그의 업적은 물론 훌륭하고, 그의 연구가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과 비교해보면 대중적 지명도라든가, 유명도의 정도는 어마어마하다(그게 내가 그의 강연 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도 강연장을 찾았던 이유다). 그건 그의 개인적인 사정과도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비극적인 병에 걸린 천재 과학자가 1분에 여섯 단어밖에 쓰지 못하면서도(그러니까 방정식은 하나도 쓰지 못한다), 우주의 비밀을 캔다는 것은 분명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그것뿐이었을까?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병을 비극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고, 또 그만큼의 연구 업적을 냈다. 또한 자신의 이론이 틀렸었다고 과감히 인정할 줄 아는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였고, 또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스티븐 호킹은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썼었다.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 157쪽)

믈로디노프는 스티븐 호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초연하고 자연이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폭풍도 견디는 부동의 거대한 산이었다.” (《스티븐 호킹》292쪽)


믈로디노프는 이론물리학자이면서 글쓰기 강좌를 전담하는 글쟁이의 진가를 스티븐 호킹과의 인연과 스티븐 호킹의 과학적 업적과 스티븐 호킹의 인간적 면모를 그리는 데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연구는 연구대로, 스티븐 호킹의 사생활은 그가 알고 있는 한 그것대로, 그렇다고 스티븐 호킹을 우상화하지 않으면서, 질병에 쓰러지지 않는 위대한 인간의 정신을 감동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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