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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pr 03. 2021

술과 함께 역사를...

미야자키 마사카츠,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


가장 자유로울 것 같은 나라, 그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로 발돋움하던 시기에 금주법을 제정한 것은 아이러니다. 1919년 미국은 알코올 도수 0.5% 이상의 주류를 금하는 법을 제정했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폐지하기 전까지 14년 동안 시행되었던 법은 인간의 욕망에 완전히 반하는 조치였다는 게 금방 드러났다. 아직 경제가 활황 상태였던 미국이었고 사람들은 술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금주법 이전보다 술집(비록 불법이었지만)이 늘어났고, 알코올 소비량도 줄었다고 할 수 없었다. 거기에 알 카포네와 같은 마피아가 지하에서 술 유통을 장악하면서 세를 불렸다. 중세 종교국가도 아닌 20세기 미국에서 어떻게 그런 법이 제정되었는지 아연하다.


‘술 취한 원숭이(Drunken Monkey) 가설’이란 게 있다. 로버트 더글리가 제안한 가설로, 사람이 술을 마시게 된 것은 진화적으로 음식물(여기서는 잘 읽은 과일)을 확보하기 위해서 알코올이라고 하는 분자를 후각을 이용하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술은 (알코올 발효를 통해) 자연에서 생성되었고, 인류의 초기부터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자연적인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 술은 도수가 낮았지만, 그것으로도 우리의 조상은 즐거움을 느꼈고, 그 즐거움을 높일 방법으로 술의 도수를 높이는 방법을 꾸준히 고안해 왔고, 또 다양한 것을 이용해서 술을 만들어 왔다. 그 결과는 우리는 다양한 술을, 또 다양한 도수의 술을 마시며, 즐기고, 또 취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으니 술의 세계사, 내지는 세계사 속의 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일이다.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풍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술집 선반에 놓은 다양한 술을 보면서 저걸 통해서 세계사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물론 책을 쓰기 위한 자리 깔기이겠지만) 마야자키 마사카츠는 세계사를 다섯 시기로 구분하고, 그 시기를 술의 역사와 매칭시키고 있다. 수렵과 채집 시기는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당분이 많은 소재를 발효시킨 양조주의 시대, 농경과 도시의 출현 시기에는 곡물을 당화시키고 발효시킨 후 대량의 양조주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술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대, 유라시아의 문화가 교류되는 시기에는 이슬람에서 개발된 증류 기술이 동서로 전파되어 다양한 증류주가 탄생했고, 대항해시대에는 다양한 혼성주가 등장했고, 산업혁명 이후에서 현대에 이르는 시기에는 술의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서 상품화되었다.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시기별로, 또 지역별로 술이 등장하고 소비되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가만히 보면 술이란 게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을 위안하기 위한 방식으로, 또는 오염된 물을 대체하는 음료로 이용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고된 노동을 위한 마취제 같은 역할로 쓰였다. 그리고 많은 경우 새로운 술이 우연에 의해서 개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광경은 술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 우연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집중력에 빙긋이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많은 술에 대해서, 또 그 술의 연원과 그 술이 관여한 역사에 관해 많은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술의 속성이 그래서인지 하나의 술의 연원에 관해서도 다양한 설(設)을 소개한다. 어쩌면 술을 마시면서 만들어낸 재미있는 얘기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그런 설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다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관심거리다. 그러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정말 술은 정말 즐겁게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민을 잊으려고 마시는 술은 더한 고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여기의 술 얘기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저 흥밋거리로 받아들여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역사를 알고 모르고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술을 마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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