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Apr 03. 2021

'건너온' 한국인의 맛

정명섭, 《한국인의 맛》


우리 한국인이 지금 먹는 것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던 것과는 판이하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심지어 요즘 시끄러운 김치마저도 그 원형이야 오래전 우리 조상이 만들어 먹던 것이지만, 지금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김치에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고추 자체가 한반도에 들어온 게 그렇게 오래 전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그건 조선 시대의 일이니 좀 된 일이다. 많은 음식이 대한제국 시기에서 일제 시기에 도입되어 우리의 입맛을 바꾸어놓았다. 제국주의의 물결을 타고, 혹은 서양 숭배의 허깨비와 같은 것이 홀리듯 우리의 입맛을 장악하고, 결국은 마치 그게 원래 우리의 음식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음식들이 많다. 정명섭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 음식들에 관한 것이다. 


목록부터 보면, 아지노모도, 짜장면, 돈까스, 설탕, 카레, 단팥빵, 김밥, 팥빙수, 커피. 어떤가? 원래 우리 것이 아니었던 것이 확실한 것도 있지만, 이것도 그런 거였어? 할 만한 것도 있다. 이를테면, 단팥빵이나 김밥, 팥빙수 같은 것들이다. 설탕도 이것이 어느 시기쯤에 한반도에 들어왔는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들이 그 과정과 계기가 어쨌든 거의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해 오던 시기에 도입되어(중국에서 건너와 변형된 짜장면마저도 임오군란과 관련이 있으니 일본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결국은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음식들이 한반도에 들어온 후 모두 변형을 겪었다는 점이다. 짜장면이나 김밥은 말할 것도 없고, 돈까스도 우리는 그게 처음 개발된 일본과는 다른 형태로 먹고 있으며, 단팥빵 역시 그렇다. 곱게 간 얼음에 과일물을 스미게 하여 먹던 일본인과는 달리 빙수에 팥을 올려놓고, 또 지금은 갖가지의 것을 올려놓은 것은 한국인이었다. 화학조미료에 입을 길들이게 된 것은 분명 일제의 영향이지만, 같이 화학조미료를 쓰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맛이 다른 것은 우리의 화학조미료가 조금씩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밥과 같은 경우에는, 일본에서 온 것인지, 우리나라에 원래 있던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데, 어느 정도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은 분명 교훈적인 것이다. 바로 우리의 피맺힌 역사와 함께 했으니 말이다.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대손손 조상이 먹던 것만 먹고살 수는 없다. 먹는 것뿐만이 아니다. 문명이 교류하면 서로의 것을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풍성해지고, 없던 것이 생긴다. 그게 문화가 되고 토착화된다. 그것을 우리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단계까지 이른다. 정명섭이 지목한 이 음식들은 바로 거의 그 단계까지 이른 것들이다. 그냥 그것들을 생각 없이 먹을 수도 있고, 그 과정을 아는 것이 지식에 대한 거들먹거림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그냥 재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역사, 그리 탐탁지 않은 역사를 알고도 이 음식을 내치는 것은 말도 안는 일이다. 이미 우리의 음식이 되어 버렸으니. 

작가의 이전글 출판사 편집자의 기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