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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pr 06. 2021

중세는 여전히 우리 속에 있다

안인희, 《중세 이야기》


중세(中世, Middle Age)는 말 그대로 중간 시대란 의미다. 그러니까 어떤 시대와 시대 사이의 시대란 뜻이다. 좀 야박하게 풀이하면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시대와 시대를 잇는다는 의미다. 그렇게 받아들여져 왔던 게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그리고 근대 르네상스, 과학혁명 시기 사이에 뚜렷한 역사적 발전을 찾아볼 수 없는 시대, 그래서 역사책에서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시대가 바로 중세였다(그래서 중세라 불렸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 연구가 깊이 이루어지면서 중세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이른바 ‘암흑시대’라는 별칭을 쓰는 경우도 그리 흔하지 않고, 그 시대 나름대로 (완만하지만) 발전을 이루었다는 시각이 우세해지고 있다. 게다가 안인희가 중세를 바라보고 중세의 이야기를 쓰는 관점은 거기서 나아가 중세야말로 진짜 유럽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서양 역사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분명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지만 그 시기를 살펴보면 유럽 전체가 아니라 지중해 중심이었으며, 현재 유럽의 중심을 이루는 지역은 변방으로 기술되거나 아니면 거의 기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유럽이 실제 역사의 중심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중세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이다. 그러므로 유럽, 서양의 역사, 그리고 그 유럽이 근대 이후 세계 정복에 나서게 된 사정, 혹은 저력을 이해하기 위해선 중세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세는 보통 서유럽의 멸망(476년)에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스페인의 그라나다 함락으로 완성된 레콩키스타(1492년)까지를 이른다. 이 시기는 로마의 멸망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를 거쳤다. 프랑크 왕국과 같은 국가가 나타났지만 왕의 장악력은 로마 시대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영토들은 쪼개지기와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또한 로마 시대에 공인받은 기독교가 완전히 대세를 장악하여 ‘신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였다. 그래서 황제와 교황의 협력과 대립, 갈등이 이뤄지면서 혼란스러웠고, 가짜 뉴스에서 비롯된 십자군 전쟁은 겉으로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와는 다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결국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점령당하면서 과거의 유산이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물결이 쏟아지면서 르네상스 시기가 도래하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스페인은 신세계 정복에까지 나서게 된다.


안인희는 이러한 중세의 역사를 대체로 시대 순으로 소개하고는 있지만, 단순하게 통사적으로 건조하게 나열하는 게 아니라, 사건의 발생과 그 영향을 서로 얼개를 맞추며 시대와 사건의 의미를 생각해보도록 하고 있다. 비록 싸움을 일삼았던 시기처럼 보이지만, 그 싸움을 기사도 문학과 같은 것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던 게 중세였고, 그때의 약속과 배신 등이 현재의 사고를 낳기도 했던 게 중세였다.


우리의 것도 아닌, 유럽의 중세를 읽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 싶겠지만, 사실 세계의 근대 이후가 그 역사에 얽혀 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이라는, 사실은 얼토당토 않은 조약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선이 정해진 것은 그 일례다. 아직도 우리는 중세부터 비롯된 그들의 문학과 그림의 전통 속에서 예술을 찾고 있기도 하다. 중세는 여전히 우리 근처에, 그리고 우리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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