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May 06. 2021

머리로, 가슴으로, 눈으로 읽는다

이지은,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


역사를 보는 시각은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미술사학자이자 장식미술 감정사인 이지은이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프랑스 귀족 사회의 화려했던 모습을 그려낸 이 책은 그 다양성의 측면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단지 많은 역사책에 좀 색다른 책 하나를 보탰다는 의미에서 이 책의 가치를 셈할 수는 없다. 어떻게 다 찾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한 수많은 도판은 물론 그것들을 소개하고, 또 역사적 의미까지 나아가는 이지은의 글쓰기는 매혹적이다. 역사적 사실을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시대에 살아가는 이들(주로는 귀족)의 곁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


16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구성은 다소 공식적이다. 각 장의 맨 앞에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드러내는 그림 하나를 크게 제시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 혹은 장소나 사건에 대해 소개한다. 그리고 그 인물이나 상황에 해당하는 도판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단순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전공 분야로 들어간다. 즉 오브제에 관해서, 나아가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렇게 한 장을 마치면 그 장에 해당하는 당시의 물건에 대해 보강 해설이 이어진다(이 부분이 저자의 진짜 전공이다).


그런데 이 다소 공식적인 구성이 전혀 답답하거나 딱딱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각 장과 장은 서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각 장마다 이야기의 흐름이 따로 있다. 실려 있는 도판들을 보면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다. 글자가 있기에 읽지만, 글자만 읽는 게 아니라 글과 사진이 어우러져 보게 된다.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 16세, 마담 퐁파두르,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과 같은 왕실의 인물들, 푸셰와 같은 화가나 화려한 공방을 이끈 장인들, 그리고 그들이 활동한 베르사유 궁전 등이 호기심을 사로잡으면서, 화려한 로코코 시대의 미술과 책상과 의자를 비롯한 각종 소품들이 눈길을 붙잡고, 그 미술을 향유하고, 물건들을 사용한 당시의 귀족들의 삶이 선연하게 펼쳐졌다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저자는 이 책을 시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썼다고 했다. 그림과 물건에 드러나는, 혹은 뒤에 숨은 당시 사람들의 숨결을 함께 느끼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을 느끼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 이런 책을 이렇게 읽고 나면 단지 그 시대에 국한되어 이런 방식으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 다른 시대는 어땠는지 알고 싶어 진다. 앎의 의욕이 고조되는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간다. 정말 그런 느낌이 들게 한다.


아무리 칭찬해도 아깝지 않은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치토스와 담배 속의 화학물질, 그리고 과학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