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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y 08. 2021

진취성과 복고가 뒤섞인 시대

이지은, 《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에서는 주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에서는 주로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따지고 보자면 모두 그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에서는 17세기, 18세기 귀족 문화가, 도판들과 함께 더 눈에 들어온다면 《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은 19세기의 특징이 더 많이 읽힌다. 미묘한 것 같지만 분명하다.


19세기는 부르주아의 시대였다. 부르주아의 시대라는 얘기는 이제 귀족이라는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신분보다 살아가면서 가지게 되는 직업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라는 얘기다. 물론 여전히 어떻게 태어났느냐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상당 부분 규정하는 시대였지만, 귀족도 그냥 귀족으로서 인정받는 시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직업을 통해서 사회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맺느냐가 관건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시대를 우리는 ‘근대’라 부른다. 그리고 그 근대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이었다. 현대의 과학 기술의 기초가 그 근대에 발견되고 발명되었다. 대표적으로 열역학이 그렇다. 자동차, 전화, 기차 등이 바로 그 시대에 발명되었다. 우리가 문명의 이기라고 하는 것들이 이미 그 시대에 등장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과학의 진보에 환호하며 미래에 대해 밝은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바로 19세기였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다. 부르주아의 시대에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주로 번듯한 직업을 가진 남성들이었다. 여성들은 여전히 뒤에서 남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또한 참혹한 생활을 하는 노동자와 빈민들이 쏟아지는 시대이기도 했다. 백화점이 등장하면서 소비 사회의 태동을 알렸지만, 백화점에서 소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앉지도 못하고, 아주 저렴한 임금을 받고서 일을 해야 하는 공장의 노동자와 백화점의 점원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에 대해 남겨진 것도 별로 없다. 간혹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몇몇 작가의 작품과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쪼가리들을 모아, 혹은 귀퉁이에 겨우겨우 남겨진 것들을 통해 그 시대 밑바닥 삶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도시(파리)가 건설되고, 근대의 예배당이라 일컬어지는 기차가 유럽의 각 지역을 연결하고, 백화점이 탄생하고, 만국박람회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껏 드높이는 진취의 시대였지만, 예술적 감각은 어쩌면 퇴보했다고도 볼 수 있는 시대가 19세기였다. 이른바 ‘절충주의’, 혹은 ‘매너리즘’이라고 뭔가 있어 보이게 부르지만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에서 보았던 루이 14세에서 루이 16세 시대에 이르는 과거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변형을 가하는 스타일이었다. 루이 14 세풍의 다리에 고딕풍의 등판을 단 의자는 우스꽝스럽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모던’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창조적이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곤란한 복고주의였고, 과거 지향적었다. 역동적인 세상에서 보수적인 취향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예술운동 아르누보 역시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순적인 19세기를 정치가 아니라 문화를 통해서 뜯어보고 있노라니 사실 현대를 기록하는 방법도 이렇다면 과연 어떨까 싶다. 진짜 19세기의 모습이 19세기 중반 이후에야 등장하듯, 우리의 21세기도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모습과 문화적으로 그닥 다를 게 없다. 후에 우리의 21세기를 어떻게 부르고, 또 무엇을 특징으로 여길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20세기와 달라진 바 없는 20세기의 딸린 시대처럼 기술하면 상당히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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