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May 09. 2021

죽음의 부정이 인간성의 본질

어니스트 베커, 《죽음의 부정》


어니스트 베커의 《죽음의 부정》은 1974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영예와 함께 눈의 띠는 것은 그의 사망년도다. 1974년. 그는 자신의 작품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2개월 전 마흔 아홉의 나이였다. 베커는 암 진단을 받고 죽기 전 5년 동안 이 책을 쓰는 데 마지막 힘을 쏟았다고 한다. 정신 질환 등에 대한 분석이 인간성의 본질을 이해하게 해준다는 전제 아래서 프로이트, 키에르케고르, 오토 랑크 등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을 거듭했고, 이를 이 책에 담았다.


그에게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이 세계는 결코 천국이 아니다. 천국은커녕 끔찍한 세계다. 아동에 대한 그의 분석은 어린이의 귀여움이나 세상에 대한 경이로운 발견 같은 게 아니라, 역겨운 악취의 세계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난감한 세계다(“인간은 압도적으로 비극적이고 악마적인 세상에서 살아갈 운명이다”, 433쪽). 아동은, 그리고 인간은 이제 살아가야 하는 이 세계에 대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석해야 하고, 눈을 감아야 한다.


그렇게 막막하고도 끔찍한 세계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인간의 조건은 바로 불안과 공포다. 정확하게 말하면 삶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 불안과 공포를 부정하려는 생물학적 욕구다(이에 대해서는 아지트 바르키, 대니 브라워가 《부정 본능》이라는 책에서 이어받았다).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짊어진 게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운명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다. 그게 공포의 근원이며, 그 공포를 극복하고자 하는, 혹은 극복해야만 하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다.


그 극복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사실은 극복할 수 없는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의식 속에 묻어두거나, 혹은 인간의 무능력함을 잊기 위해 영웅주의를 만들어낸다. 종교와 같은 영속적 가치를 갖는 체제를 만들어내고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종교만이 아니다. 정복도 그런 것이고, 가부장적 위계 질서도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웅주의는 필연적으로 ‘악(惡)’을 불러들인다.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불멸의 기획은 서로 다르고 갈등한다. 불멸의 기획은 절대적인 것이라 믿어야 하므로 다른 불멸의 기획은 잘못된 것이고,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툼이 생기고, 그 다툼은 어떤 경로든지 악과 관련되어 있다(악을 행하든지, 상대방을 악이라 칭하든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게 되는 것은 신경증, 조현증, 우울증 등과 같은 정신질환에 대한 분석이다. 프로이트, 키에르케고르, 랑크, 브라운 등의 분석에 기대고 있지만, 결국은 베커의 분석이다. 그는 그런 정신질환에 대한 과학적 분석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에게 과학은 삶에 대해 충분히 진지하지 않은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과학이 정신질환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을 하더라도 그건 인간적이지 않은 것이며, 그런 질환으로부터 인간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배신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과학보다는 더 믿을 만하다.


나는 베커의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각종 정신질환에 대한 그의 분석은 1970년대의 것이며, 당시의 과학은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 미치지 못했을 수 있다. 지금의 정신질환에 대한 과학의 접근은 정신분석학에서의 접근보다 더 믿을 만하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더 많은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도 하나의 시각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리고 과학만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어니스트 베커의 생각이 어느 정도도 타당하며, 또 인정받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복간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 책의 가치, 이 생각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본다.

작가의 이전글 진취성과 복고가 뒤섞인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