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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y 12. 2021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서평 읽기?

어슐러 K. 르 귄,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어슐러 K. 르 귄? 난 이 분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골랐다. 당장 SF라고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밖에는 생각나 않는 나에게 SF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은 거의 소용없는 것일 수 밖에 없다. 또 이 책을 고르는 데 “삶과 책에 대한 사색”이라는 부제는 거의 영향이 미치지 못했다. 이런 부제를 단 책이 어디 한둘인가? 다만 제목에 이끌렸다. 어떻게든 읽겠다는 이 부드러운 다짐이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 그런 거 아닌가 싶고, 또 내 마음 같기도 하고...


책은 ‘강연과 에세이’, ‘책 서문과 작가들에 대한 글’, ‘서평’, 그리고 작가의 어느 일주일 동안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연과 에세이는 이 책의 원제(Words Are My Matter)에 가장 충실한 부분이다. 여기서 르 귄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글(강연)도 포함시키고 있지만, 그래도 제일 인상 깊은 부분은 문자로 쓰인 문학에 대한 옹호와 자신의 분야인 ‘장르 문학’을 이른바 ‘문학’과 구분해서 낮춰 보려는 시각에 대한 강한 이의제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절대 책이 죽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이야기로서의 SF 혹은 장르문학의 가치와 즐거움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말하지 않기에, 책은 도전이 된다. 책은 물결치는 음악으로 마음을 달래 줄 수도, 요란한 웃음소리나 거실에 울리는 총소리로 귀를 먹먹하게 만들 수도 없다. 책은 머릿속으로 귀기울여 한다. 책은 영상이나 화면처럼 눈을 움직여 주지 않는다. 스스로 정신을 쏟지 않는 한 정신을 움직이지도 않고, 마음을 두지 않는 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해 주지 않는다. ...

책은 재미있는 물건이다. 첨단기술을 뽐내지는 않지만 복합적이고 극도로 효율적이다. 작고 경제적이며, 감상하기나 다루기나 기분 좋을 때가 많고, 수십 년이나 어쩌면 수백 년까지도 알 수 있는 정말 뛰어난 장치다. 선을 꽂거나 활성화하거나 기계로 실행할 필요가 없다. 빛과 사람의 눈, 그리고 사람의 머리만 있으면 된다.“ (132~133쪽)


하지만 곤란한 게 있다.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작가의, 또 거의 읽어보지 못한 책들에 대한 서평을 읽는 난감한 상황에 대해서 거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책 내용도 모르는데 그 책에 대한 소개나 서평, 소감이 쉽게 눈에 들어 올 리는 없다. 그렇게 아득한 기분으로 읽는데... 이런 데서도 건질 게 있다는 건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바로 주제 사라마구. 포르투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과 《코끼리의 여행》과 같은 책을 카트에 넣었다가 결국은 읽지 못했던 작가다. 르 귄은 사라마구에 대해(《타임머신》의 작가 H.G. 웰스와 함께) 가장 애정을 가지고 쓰고 있다. 여러 서평을 합쳐 사라마구의 작업에 대해 깊게 분석하고 있으며, 독립된 서평도 싣고 있다. 그녀는 사라마구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원로이며 눈물이 있는 남자, 지혜로운 남자”라 칭하고 있다. 르 귄을 통해 이제 다시 용기를 내어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을 읽어볼 수 있게 될 것 같다(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소득이다).



http://blog.yes24.com/document/1436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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