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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n 07. 2021

모든 이름에는 역사가 있다!

피터 워더스, 《원소의 이름》


모든 이름에는 역사가 있다!

과학의 용어는 아주 객관적일 것 같고, 반드시 정해진 규칙대로 이름이 붙여질 것 같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용어의 선택과 관련해서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용어를 쓴다는 것은, 그 현상, 혹은 물질에 관한 해석을 독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용어에 기초해서 현상과 물질을 바라보고, 연구를 이어간다.


피터 워더스의 《원소의 이름》을 보면 더욱 그런 역사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주기율표나 화학의 원소에 관한 책들은 많다. 주로 원소를 발견한 역사, 원소의 성실에 다루는데, 가끔은 그 원소의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불리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확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원소의 이름》만큼 자세하게 서술한 책은 없다.


원소들의 이름이 지금과 같이 불리기까지,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화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었고, 그렇게 해서 왜 지금의 이름이 채택되었는지(종종 아무런 이유 없이 채택된 경우도 없지 않지만) 피터 워더스는 각종 문헌들을 인용하고, 또 라틴어와 그리스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등의 의미를 해석하며 보여주고 있다. 그 이름들이 현재와 같이 붙여지게 된 과정을 보면 대체적인 원칙과 함께 학계에서의 영향력, 혹은 대중의 기호 같은 것이 적지 않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여러 이름이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제안되었고, 그 이름들이 각축을 벌이다 점점 하나로 수렴해가는 과정도 있고, 어떤 이름이 내내 불리다 느닷없이 권위자가 바꾸자고 해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적지 않은 경우 그 이름이 그렇게 불리게 된 데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이름이 붙여졌다라도 그만큼의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로 붙여진 경우도 있다. 그런 걸 보면 앞에서 지적한 과학의 용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흥미롭게 볼 여지를 주면서도, 또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기도 한다.


(저자가 소개하기를) 전혀 엉뚱하게 붙여진 이름도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원소인 산소(oxygen)와 수소(hydrogen)의 경우가 그렇다. 이 원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도 많은데(이 과정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화학자들의 이름을 거론하면, 셸레, 프리스틀리, 라부아지에 등을 들 수 있다), 그만큼 여러 책에서 그 이야기를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라부아지에 등에 의해서 산소라는 이름은 산성을 만드는 물질이라는 의미에서, 수소는 물을 만드는 물질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염산(HCl)과 같이 산소 없는 산성 물질이 있는 것처럼 산소는 산성의 핵심이 아니고, 오히려 수소이온(H+)이 산성의 핵심이며, 또 물에는 수소보다 산소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저자는 제대로 부른다면 지금의 산소는 수소, 지금의 수소는 산소라는 이름을 가지는 것이 적절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래서 H2O가 아니라 O2H).


물론 이제 와서 산소가 수소로, 수소가 산소로 명칭이 바뀔 리는 없다. 사실 그게 핵심이다. 역사를 가지고 명명된 이름이 널리 사용되는 경우, 그것이 가지는 본질적인 성질과는 달리 이름과 물질의 관계가 고정되어 버린다. 그 고정된 이름을 가지고 우리는 과학이라는 행위를 하고, 또 의사소통한다. 또한 거기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산소라는 명칭에서 산성의 의미를 잘못 생각할 수 있듯이, 그 명칭이 물질의 성질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고, 또 너무 한정시켜버리는 경우도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이 가치를 지닌다. 그냥 단순히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구나가 아니라, 그 이름이 지녀온 역사는 그 원소가 가지는 성질에 대한 발견과 해석의 역사다. 그 원소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이용해왔는지에 대한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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