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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n 05. 2021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 알려주는 것

로라 스피니, 《죽음의 청기사》


“범유행병이라는 사실이 인정되자마자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라는 비상 수단이 동원됐다. 최소한 그럴 여력이 있는 나라는 그렇게 했다. 학교와 극장, 예배 시설이 폐쇄되었고 대중교통의 사용도 제한되었으며 대중 집회는 금지됐다. 항구와 철도역에는 격리 조치가 내려져 환자를 가려내 병원으로 보냈고, 병원에서는 이들을 일반 환자와 분리 수용하기 위해 격리 병동을 따로 마련했다. 또 공공정보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재채기를 할 때는 수건을 사용하고 규칙적으로 손을 씻도록 했다. 이와 함께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피하되 창문은 계속해서 열어 두도록 했다.”


분명 지금 전 세계에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한 얘기 같다. 하지만 아니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에 대한 대처 방안이다. 로라 스피니가 스페인 독감에 대한 책 《죽음의 청기사》를 낸 것은 2017년이니 아직 코로나-19 전이었지만 마치 지금의 상황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물론 로라 스피니 역시 범유행병의 도래를 예상하고 있지만 말이다. 누구라도 그런 말을 했듯이).


제1차 세계대전 말미에 ‘밤중의 도둑처럼’ 들어와 5천 만에서 1억 명가량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비록 10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대표적으로 당시에는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안다) 더욱 자세히, 또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스페인 독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스페인 독감에 대한 설명은 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스페인 독감의 전반적인 기록은 두 대륙을 중심으로만 이뤄졌다. 전쟁과 맞물려 더욱 비참한 상황을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재이기도 했지만, 사실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두 대륙보다는 인도나 중국에서 더 많았고, 러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도 비참함의 정도는 덜하지 않았다. 로라 스피니의 《죽음의 청기사》가 가장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스페인 독감에 대해서 덜 기술되었던 유럽,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 독감은 지금 현재 미국의 신병 훈련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되어 있는데, 로라 스피니는 최초로 (확실하게) 기록된 환자가 기록된 것이 그곳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세 가지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0번 환자(Zero Patient) 찾기’인데, 중국 내륙의 외딴 시골, 전쟁이 벌어지던 프랑스 서부 전선에서 오던 기차 안, 미국 캔자스 주의 농가가 그 후보다. 아마도 지금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해서 서구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중국기원설이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겠지만, 여러 가지 증거는 아직도 미국 쪽을 더 가리키고 있다(아마 스페인 독감도 그렇겠지만 코로나-19도 ‘과학적으로’ 분명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우리가 스페인 독감을 비롯한 많은 팬데믹과 감염병에 대한 책을 다시 뒤적이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그저 흥미롭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과 이 책이 출판된 지 2년 만에 현실화되었고, 또 이 팬데믹이 종료된 후에도 다시 도래할 감염 팬데믹에 대해서 인식하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생각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전문가들과는 다른 것이겠지만 일반인들이 얻어야 할 것도 분명히 있다. 스페인 독감에 대해서 각국은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 대응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지금 코로나-19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불평한 사회적 지위, 집을 지은 장소, 식습관, 의례, 심지어 DNA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사람이 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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