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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n 04. 2021

인간의 의식과 감정에 이른 40억년의 역사

조지프 르 두,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 두의 화두는 이런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명의 탄생 시점부터, 아니 생명 이전의 화학적 진화 시점부터 시작하여 먼 길을 돌아간다. 이런 시도는 요새 유행하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그가 인간과 인간의 의식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 존재하는 생명체 모두가 최초의 생명체 이후 진화해온 모든 생명체들과 관련을 갖고 있듯이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과거에 존재했고, 또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와 연관되어 있기에,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진화의 역사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5부로 구성된 책에서 7부까지는 거의 생물의 진화를 다루고 있다(이 15부를 66장의 짧은 글들로 나눠놓았다. 각 장마다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고, 자세한 설명보다는 단상과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특이한 것은 별로 없다. 다만 강조하는 부분이 신경계라는 점이다. 이는 조지프 르 두가 신경과학자이기도 하거니와 8부부터 다룰 내용이 어쩔 수 없이 신경과 관련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물이라는 존재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에도 신경은 바로 나타나지 않고(해면동물에는 신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자포동물에서 그 단초를 보이고, 그 신경계가 복잡해지고, 집중되는 부위가 생기면서 뇌가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신경계의 진화 자체도 이전의 다른 기관과 조직에 바탕을 둔 것이고, 고도로 발달하게 된 인간의 신경계, 혹은 뇌 역시도 동물이 가지고 있는 신경계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어떤 측면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 진화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여 할 것 같다.


8부부터는 다소 어조가 달라진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도 인간의 인지 능력, 의식, 감정에 관한 것들이다. 그것들에 관해서 과학자들이 어떻게 설명해 왔는지, 그런 설명이 갖는 의의가 무엇인지, 어떤 약점이 있어서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었는지, 지금 이론이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를 짧은 글들 속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 연구와 관련해서 조지프 르 두가 경계하는 것이 있다. 인간 중심적 사고와 의인화이다. 동물에 대한 설명하는 데 있어서, 혹은 인간의 기관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의인화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 자체가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언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히 주의할 것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공포’에 관한 연구에서 어떤 부위나 신경 경로에 공포라는 이름을 붙여 설명하면, 그것과 관련해서 이미 선입견이 생겨 잘못된 인식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와 함께 가장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은 그가 동물의 의식과 감정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동물의 권리를 중시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동물의 권리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은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의식’이나 ‘감정’과 같은 단어를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라 명확히 정의된 용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의된 용어로서 의식과 감정은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슬퍼하는 것 같고, 하는 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이해하고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이란 직관이 아니라 실제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정이란 자아를 가지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데, 동물이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견해를 갖는다. 의식 역시 단순히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해 평가하고, 계획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역시 동물은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본다. (여전히 이에 대해 반론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고 보지만, 르 두는 그에 대해 답변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어쩌면 인간이 다다른 지점에 대한 찬사로도 읽히는 이 책은, 다시 들여다보면 그것이 인간이 스스로 성취한 것이 아니라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서 다다른 한 지점, 그리고 정점이 아니라 지나가는 한 지점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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