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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l 13. 2021

아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올해 벽두에 사촌동생이 죽었다. 작년 여름부터 앓았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어떤 얘기를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태어난 해가 1971년이라는 얘기. 알고 있었다. 약 100만 명의 1971년생이 50대가 된 2021년 남아 있는 숫자가 약 90만 명이라고 했다. 1/10은 죽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 50이 되지 못한 사촌동생이긴 하지만, 그 10%에 속하는구나. 애석하지만, 정말로 슬프지만, 녀석한테만 닥치는 일은 아니구나. 《아픈 몸을 살다》을 읽으며 사촌동생이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질환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 녀석이 견디어야 했을 질병은 어떤 것이었을까?


다른 두 권의 책도 생각났다.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떠올린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고,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가 생각난 것도 적어도 나한테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고,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릴 정도의 병을 앓았던 사람도 드물지 않은 만큼 나의 병력도 떠올랐다. 희미하게 기억하는, 큰 각오도 해야 한다는 얘기. 그 병이 재발하고 1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을 다녀야 했던 기억. 병원은 지긋지긋한 곳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친근한 곳이었지만, 그곳을 다시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죽는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어쩌면 내 의식 저 깊숙이 죽음이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대학에 들어가고서야 되새겨졌다.


아서 프랭크는 서른아홉에 심장마비를 경험하고, 마흔에 암에 걸린다. 수술과 몇 개월에 걸친 화학요법 치료로 완쾌되고, 3년 후 이 책을 썼다. 3년...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까? 나는 어쩌면 불안과 싸우며(그는 암과 “싸운다”는 표현을 싫어하지만), 자신의 질병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 기록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3년 사이에 재발에 대한 공포로 검사를 한 적도 있고, (개정판 후기를 보면) 다시 몇 년 후 거의 재발한 것으로 여겨지는 징후도 있었다. 질병의 공포는 그 질병에 걸리고 치료하는 과정에서보다 나았다는 판정을 받고서 더 심각해지는지도 모른다. 그 일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생각. 한번 이겨냈으니 다시 이겨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억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위기(危機)로서의 질병을 이야기한다. 회복되었으니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질병을 겪는 과정에서,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얘기를 한다. 질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시선이 어떻든지 간에 자신이 그 질병을 응시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개개인의 병을 수렴시켜 정량화하고, 객관화시켜버리는 질환(disease)이 아니라 개인마다 서로 다른 경험으로서의 질병(illness)을 이야기한다. 의사는 질환을 치료하지만,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결국 자신과 돌보는 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아서 프랭크는 질환과 질병에 관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진다. 질병에 대한 사회와 개인의 반응(특히 낙인에 대해), 의료인의 태도(질환으로서만 바라보는), 돌봄의 의미와 돌보는 이의 상처, 회복된 이후의 삶 등등. 그가 이 모든 것들에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아마 정답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회라면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시키기 힘들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고개 돌리는 의료인만 있다면 질환과 질병의 간격은 더욱 멀어지고, 환자는 더욱 감정적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환자 역시 자신의 병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병에서 회복되더라도 그 경험으로부터 얻는 것은 매우 제한될 것이다. 책을 읽어야만 이에 대해서 생각하고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에 도움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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