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Aug 21. 2021

7번의 세계화, 지금 우리의 자리는...

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제프리 삭스는 인류 문명의 발달사를 자연의 지리, 기술적 노하우, 인간의 제도라는 세 가지 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인류 문명은 7번의 세계화가 있었거나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지리와 기술, 제도는 어느 것이 다른 것을 완벽하게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역사의 변화에는 반드시 이 조건들의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인류의 역사, 즉 세계화의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영광과 잔인함 등이 엉킨 아주 복잡한 역사다. 일단 제프리 삭스는 지리, 기술, 제도의 측면에서 바로 그런 복잡한 인류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제프리 삭스가 구분한 7번의 세계화는 다음과 같다. 인류가 전 지구상으로 퍼져나간 구석기 시대, 농업이 시작되고 도시가 만들어진 신석기 시대, 이른바 말이 주도한 세계화인 기마 시대, 세계적 제국이 형성되고 경쟁한 고전 시대, 대륙 사이의 이동이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면서 글로벌 제국이 형성된 해양 시대, 산업 혁명 이후 대규모의 산업 생산을 통해 전지구적 자본주의화와 제국주의가 횡행한 산업 시대, 그리고 디지털 시대.



이러한 시대를 특징짓는 것은 기후와 그에 따른 식물과 동물의 분포에 따른 지리적 한계라고 보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비롯된 견해이기도 한데, 지리적 한계 때문에 인류의 문명과 도시의 발달, 그리고 제국은 ‘행운의 위도’라 불리는 북반구의 중위도 지방에서만 발달한 것이다. 그러한 지리적 한계는 기술 발달과 함수 관계를 갖는다. 지리적 한계가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한계를 규정하기도 하지만,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적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리적 한계와 기술적 도전은 인간의 제도에 의해서 문명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고, 혹은 저해하기도 한다(각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행정적 형태를 발명해냈다). 이를테면 해양 대국으로 발달하면서 유럽보다 더 먼저 세계를 제패할 가능성이 있던 중국(구체적으로 명)은 해금(海禁) 정책으로 말미암아 그 기회를 놓쳤고, 오랫동안 치욕을 맛보아야 했다. 또한 산업 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에서도 바로 그러한 지리적, 기술적, 제도적 요인을 골고루 들 수가 있다.


제프리 삭스는 그렇게 세계화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바로 7장까지가 그렇다. 그런 전개는 8장, 디지털 시대, 즉 현대를 이야기하면서 어조를 완전히 달리 한다. 바로 우리가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시각이 필요하고,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그가 역사의 일반 원리를 다루는 이유는 바로 현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가장 따분할 수도 있지만(이미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 읽는 것이 훨씬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뭔가 읽는 기분도 더 드는 것이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의 ‘불평등이 세계화’와 이런 역사적 관점을 통해 21세기 세계화의 미래를 조망하고 대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제프리 삭스는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석기 시대의 정서, 중세의 제도, 신(神)의 기술”이 결합된 상태로 존재하는 21세기를 두 번이나 인용하고 있다. 그만큼 불안정한 시대가 21세기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시대는 디지털 혁명, 즉 인공지능과 스마트 기계로 상징되는 어마어마한 속도의 시대다.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머지않아 극빈의 종식이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 여러 경계점들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고, 중국과 미국 사이의 대결 구도는 선명해지고 있다. 제프리 삭스는 그런 위기가 점점 증폭되고, 또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며(바로 제프리 삭스가 역사를 조망한 이유이며,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중요한 이유다), 그것을 통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고, 어떤 것이라고 지적되는 이상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제프리 삭스는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어젠더 제시가 그런 것이고(아이젠하워의 말을 빌어, “계획은 소용이 없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만사(萬事)이다.”), 사회민주주의적 관습을 퍼뜨리는 것이다. 그는 사회 민주주의라는 ‘중간 노선’이야말로 “오늘날 지구상에서 운용되는 모든 정치, 경제 시스템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제적 번영, 사회적 포용, 환경적 지속 가능성의 종합 세트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수준 높은 보건의료, 교육, 인권문제로서의 사회적 보호를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공공 영역에 대한 이해를 확고히 해야 하며, 국제 질서의 재편을 위해 유엔을 재편해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실현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 책을 자신의 막내 손녀에게 헌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의 다음다음 세대가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환경 속에서 번영하는 지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생명의 액체, 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