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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23. 2021

페니실린, 신화와 진실

데이비드 윌슨, 《페니실린을 찾아서》


페니실린은 다 알다시피 최초의 항생제다. 항생제는 인류가 감염병(세균질환에 한하지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물론 지금은 항생제 내성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지만). 페니실린 발견과 관련해서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뉴턴의 사과, 제임스 와트의 끓는 주전자의 뚜껑과 같이 과학적 신화다. 휴가와 열린 창문, 날아든 곰팡이 포자, 배양접시의 특이한 세균 콜로니 생장,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놓치지 않은 플레밍의 번뜩이는 지성... 그리고 그의 발견은 2차 세계대전에서 빛을 발하고, 인류를 구한다... 스토리는 그렇게 완성되고, 신화는 그렇게 전해진다.


그러나 모든 신화가 그렇듯(아르키메데스는 잘 모르겠지만, 뉴턴과 제임스 와트의 신화 역시)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과 관련한 이야기는 진실일지는 모르지만 사실에서는 벗어나 있다. 과학적 성과를 이해하고, 과학적 흥미를 유발하는 데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을 생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다. 또한 과학적 발견을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한 부분과 순간들에 대해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페니실린과 관련한 진실은 어떤 것인가?

데이비드 윌슨의 《페니실린을 찾아서》는 바로 그 페니실린과 관련되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보다 깊이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페니실린과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왜곡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띄엄띄엄 알고 있었고, 또한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이 적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1976년에 처음 발간되었다. 그리고 1997년에 처음 번역되었고, 2019년에 개정판이 나왔다(여러 가지 사항으로 봤을 때 개정판은 새로 번역하거나 수정한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에 나온 책이다. 그 얘기는 페니실린의 발견과 관련해서 관련 인물들 일부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기도 하고, 또 반대로 그 이후 새로이 밝혀진 내용은 담을 수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이를테면 플레밍보다 훨씬 전에 곰팡이에서 페니실린과 같은 물질을 발견해서 논문을 발표했던 뒤셴의 이야기는 없다. 또 페니실린의 작용에 대해서도 아직 밝혀지는 과정이었다). 아무튼 그런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책인데, 내 판단으로는 장점이 훨씬 앞선다고 본다. 신화가 완전히 굳어지기 전의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드러나고 거칠지만 훨씬 현장감이 느껴진다.


몇 가지만 페니실린과 관련한 신화를 깨자면,

우선 플레밍보다 플로리가 페니실린의 성공에 더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이다. 플로리의 역할을 더 크게 보는 것은 에른스트 페터 피셔 등이 이미(물론 시기상으론 이 책보다 뒤이고, 그가 전하는 얘기는 여기의 것과 다른 부분이 없지 않다) 얘기했지만, 대중으로부터 널리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플레밍이 푸른곰팡이(페니실륨, Penicillium)으로부터 페니실린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논문으로 처음 발표한 것은 맞지만, 그것의 가치를 알아내고 진짜 인류가 약으로 쓸 수 있게 만든 것은 옥스퍼드대학의 플로리와 체인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플레밍이 논문 이후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고 얘기해왔지만, 실제로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약으로서 효용보다는 세균을 분리하는 데 쓰려는 목적이 컸다), 그렇지만 그는 중간에 그만두었고, 그때까지의 결과를 발표하지도 않았고, 그 내용을 플로리와 체인에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플로리와 체인은 논문 검색을 통해 플레밍의 논문을 찾았고, 그에게 균주를 요청했다(다행스럽게도 플레밍은 균주를 보관하고 있었고, 흔쾌히 내주었다).


더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플레밍의 세기적 발견은 많은 우연이 거듭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플레밍은 자신이 처음 곰팡이에 오염된 배양접시를 관찰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휴가라든가, 열린 창문이라는 것은 초기 기록에는 아무데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곰팡이 주위에 세균(황색포도상구균)이 자라지 않는 것을 보고 흥미롭게 여긴 것만은 사실인데, 그는 여기서 잘못된 해석을 한다. 즉, 곰팡이에서 나온 물질(결국은 페니실린)이 세균을 죽였다고 해석했는데, 사실은 나중에 알려진 페니실린의 작용을 보더라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 적지 않은 과학자가 플레밍의 발견을 재현해보고자 했지만 재현할 수 없었다. 페니실린은 자란 세균을 죽이는 게 아니라 세균의 세포벽 합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분열하는 것을 막을 뿐이다. 그러니 먼저 곰팡이가 있어야 하고, 그 이후 세균 배양이 이뤄져야 그 효과를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아무 곰팡이나 그런 것도 아니고, 특수한 변종이라야 페니실린의 효과를 볼 수가 있었으니, 여러 가지 운이 작용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플레밍의 업적은 어느 한도 내에서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맞다.


이 책의 절반은 그와 같은 페니실린 발견과 관련한 사실(언급해야 하는 것이 더 많다-너무 많아 생략할 수 밖에 없다)을 바로잡는 것이고, 나머지는 페니실린의 의학적 사용과 관련한 내용이다. 이 부분 역시 굉장히 흥미로운데, 플로리가 대량 생산을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가는 장면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환자 치료와 관련해서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극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미국에서 벌어진 페니실린 대량 생산과 관련해서도 그냥 시설의 문제만이 아니라 중요한 혁신이 필요했으며, 그것 역시 적절하게 인정해야 한다.


데이비드 윌슨은 페니실린이야말로 현대 제약 산업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화이자는 페니실린의 생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그 이전에는 제약회사라기보다는 음료와 식품의 첨가물을 생산하는 회사일 뿐이었다). 또한 페니실린을 ‘기적’의 약으로서만 아니라, 미생물을 의식적으로 길들인 최초의 사례로서 더욱 중요하게 보고 있다. 페니실린은 여전히 신화다. 플레밍과 관련한 신화 역시 끈질기게 남을 것이다(이 책이 있었음에도 플레밍의 신화는 여전한 것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신화는 신화대로 남을 수 있지만, 진실은 진실대로 규명되어야 하고(그래야 정당하다), 그 의의는 명확히 파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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