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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07. 2021

체르노빌 - 역사적 관점

세르히 플로히, 《체르노빌 히스토리》


1986년 4월 26일 밤 당시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북쪽 체르노빌의 원전이 폭발했다. 소련 지도부의 사건 은폐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사능은 국경 제한 없이 유럽 지역까지 퍼져갔고, 결국 최악의 방사능 유출 참사로 기록되었다(그 기록은 25년 후 바뀌었다).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는 역사 연구로서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를 다루고 있다. 소련의 원전 역사에서 시작해서, 당시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시도된 개혁(페레스트로이카), 개방(글라스노스트)의 움직임(이 책에서 보듯이 완전하지 않았지만)을 배경으로, 원자로가 폭발한 그 날의 과정과 사건의 전개,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과 소방관 등을 비롯한 이들이 영웅적 노력, 이후 소련의 은폐 시도, 그리고 이후 우크라이나 독립과 소련의 해체, 2000년 원전 폐쇄(그때까지 체르노빌에서 원전이 운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2018년 훼손된 원자로에 새로운 보호막을 세운 마지막 단계까지를 마치 대하소설처럼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요점은 두 가지다. 체르노빌 원전 사건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이는 단순히 폭발 자체의 직접적인 책임만이 아니라(이는 당시 재판에서 책임지워졌던 잘못 진행된 터빈 시험일 터이지만) 사건 전체의 전체적인 책임을 말한다. 즉 근원적인 책임을 찾는 것이다. 세르히 플로히는 당시 모스크바와 키예프(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 체르노빌을 분주하게 오가면서 이뤄진 많은 움직임들을 기록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사고의 좀 더 근원적인 원인은 소련 정치 체제의 중대한 결함과 원자력 산업의 중대한 결함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의 결함 중 하나는 원자력 에너지 산업이 군사 부문에서 파생했다는 것이다. 체르노빌형 원자로는 핵폭탄을 생산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을 변형해 만들어졌다. 이에 더해 일정한 물리적 조건에서 매우 불안정한 원자로였는데도 안전하다고 선언되었다. ... 또 다른 결함은 발전소 직원들이 절차와 안전 규칙을 위반한 것이었다. 이들은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에 신화를 도입했고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무모한 태도를 취했다. ... 사고가 난 직후 공포가 확산되자 전제적인 소련 정권은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여 국내외의 수백만 주민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막을 수도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방사능 피폭을 야기했다.” (468쪽)


그러니까 원자로 자체의 문제점과 안전에 대한 과도하고도 잘못된 자신감에 비롯된 규칙 위반, 그리고 소련 체제의 경직성과 폐쇄성이 모두 이 사건에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르히 플로히는 역사학자로서 더 큰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이 체르노빌 사건이 소련의 해체와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파탄나기 일보 직전이던 소련 경제였고 그 상황은 거의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체르노빌 사건은 소련 체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폭로해버렸고, 에너지 문제에서 중대한 결함을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는 환경민족주의가 발흥하면서 연방 탈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즉 체르노빌 사건을 정치적 변혁으로 이어진 흐름 속에서 전환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 사건만이 그 흐름에서 가장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모든 역사학자나 정치학자 등이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시점 상으로도, 그 파급력으로도 소련의 해체의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이 두 가지 외에도 세르히 플로히가 이 책에서 신경 쓴 점을 두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한 가지는 원자로 폭발 당시 목숨을 걸고 원전으로 뛰어들었던 이들의 영웅적 행동과(“살아있는 로봇”) 그 이후 원자력의 경제성 환경, 안전성을 둘러싼 논쟁이다. 첫 번째의 것은 과연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런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추가 폭발을 막을 수 있었고, 그래서 전 유럽이 결정적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했다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그 다음 얘기는 지금도 논쟁거리이다. 이 논쟁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이 사건 25년 후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건으로 더욱 첨예해졌다. 원자력이라는 현재까지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원이라는 경제성과 그 당시보다는 훨씬 안전해졌다지만, 제로(zero)가 될 수 없는 위험성에 그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한 공포는 서로 양립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세르히 플로히는 체르노빌 사건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의 우리말 부제를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이라는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원자력 혹은 핵에 관해) 이 교훈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을 때는 과연 교훈이라는 게 필요할까 싶다. 그게 이 책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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