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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08. 2021

ADD 환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미나 타이헤르트, 《괜찮아! 조금 벗어나도》


[도서]괜찮아! 조금 벗어나도

미나 타이헤르트 저/김완균 역

7분의언덕

 201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ADD, 그러니까 이 용어보다 훨씬 더 대중에게 익숙한 ADHD에서 H가 빠진 이 ‘질환’을 우리말로 옮기면 ‘주의력결핍장애’다. ADHD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이니,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느샌가 모두 다 아는 듯한 질환이 된 ADHD는 집중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지 못해 항상 부산스러운 ‘아이’를 일컬었다. 그러니 ADD는 집중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부산스럽지는 않은 경우를 말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다. 단순히.

 

그런데 정말 ADD가 어떤 증상인지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을까? ADD를 갖고 있는 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을까?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 슬퍼하고, 또 어떤 경우에 삶에 보람을 느끼며 기뻐하는지 알고 있을까?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통합되며, 혹은 어떻게 소외되는지 우리는 신경 쓰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하나라도 대답할 수 있을까?

 

미나 타이헤르트(책에서는 이 이름보다 미나 빌헬미나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두 번째 결혼 후에 얻게 된 성이 타이헤르트라 짐작한다)는 스물 넷에 ADD 진단을 받는다. 그럼 그 전에는 어땠을까? ADHD인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였지만 동생이 태어나고 난 후 유치원에 가면서부터 그녀는 누구에게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집중하지 못했고,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남과 수도 없이 대립하고 다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끊임 없이 질책받고 쫓겨나기를 반복했다.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진단을 받고(잘못된 진단이었다)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 스물 넷에 받아든 ADD라는 진단은, 일단 충격이었지만(이 나이에!) 그제서야 자신을 이해하고 늪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행동 치료와 약물 치료를 받았고, 자신이 남들과 무엇이 다른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으니 무턱대고 싸우는 일도 줄었다. 다투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일찍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도 있었다. 특히 새로 만나 결혼한 남편은 미나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랑을 주었다. 그렇게 미나는 ADD라는 질병(장애?)를 그대로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았다. 솔직하고, 또 당당하게.

 

대부분은 자신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어떻게 세상과 사람들과 대립하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대체로는 자신의 잘못에 관한 이야기다.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거나, 혹은 딱하다는 눈길을 요청하는 것도 아니다. ADD를 겪는 아이, 소녀, 성인이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신경학 도서나, 혹은 방송이나 출판물에서보다(그것도 항상 단편적이었지만) 여기서 ADD, 나아가 ADHD에 훨씬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은 주변의 모든 자극들을 무시하지 못하고 흥분된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필요한 자극이 아닌 경우는 무시하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끝까지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온갖 소리, 온갖 냄새, 온갖 모양과 움직임이 모두 자극으로 다가오고 어느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집중하지 못하고, 어떤 일을 하다 금새 다른 일로 넘어가버리곤 한다. 이는 (아직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도파민이나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어떤 이유로든 모자라거나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그들도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 않는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 그걸 안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이 문제다. 특정 상황에서 그들의 잘못은 분명히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솔직하게 말해 난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그런 장애가 있음을 아는데도 무조건 혼을 내고 멀리 해야 할까? 아,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을 이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끔찍한 일이다. 그들도 이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으며(실제로 그렇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다. 그래도 몇 가지만은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받아들이지는 못하되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들도 지극히 평범할 수 있으며, 단점이 있는 만큼 장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지 않을까? rmflrh 이 장애에 대해 적극적인 진단을 통해(실제보다 더 많이 진단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치료(궁극적인 치료는 아니겠지만)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므로, 우리와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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