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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10. 2021

인류의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 존재했던 화학

장홍제, 《화학 연대기》


장홍제 교수가 생각하는 화학이란 ‘변화의 학문’, ‘관계의 학문’을 넘어서서 “예술”이다. “예술”이란 것은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여하면서 학문의 흐름을 보았을 때 느끼는 것일 테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선뜻 와 닿는 느낌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 화학은 물질의 변화와 관계를 탐구하고, 그것을 통해서 실용적 목적에 이용하는 학문이라는 정의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훨씬 일반적인 정의인 셈이다. 그리고 장홍제 교수가 유구한 화학의 역사를 서술하면서도, 사실 화학의 “예술”적 측면에 그리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다(물론 결정적 순간에 감탄의 목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화학 연대기”라는 제목답게, 이 책은 화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꼼꼼하게 추적하고 있다. 과학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거의 빠지지 않는 Introduction처럼 문명의 태동기와 그리스 문명을 거쳐 철학적 사유로 물질의 근원과 변화를 생각하던 시대에 대한 서술한다. 그리고 나서 연금술의 시대로 넘어가는데, 유럽과 아라비아의 연금술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의 연금술까지 포함시켜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면서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지만) 당연한 것이다. 장홍제 교수는 연금술에 대해서 다소 긍정적인 시각을 피력하고 있는데, 어쨌든 그 시기의 기술이 이후의 화학 발전의 바탕이 되었다는 시각이다.


그 이후는 화학의 눈부신 발달이 이어진다. 연금술에서 라부아지에 등의 화학 혁명은 바로 이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여러 철학적 변화와 함께 기술적 변화가 화학 혁명의 바탕을 이루게 된다. 저자는 ‘화학의 아버지’로 돌턴, 라부아지에, 베르셀리우스. 이 셋을 꼽고 있는데, 많은 책들이 라부아지에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에 비해서는 당시 화학의 선구자들에 대해 골고루 관심을 두고 있는 편이다.


분석화학을 통하여 많은 원소가 발견되고, 무기화학의 발달과 주기율표의 발명이 이어진다. 열과 에너지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해 물리화학이라는 분야가 등장하고, 생명의 물질이던 유기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면서 물질의 결합과 구조에 대해 탐구하는 유기화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한다. 이러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화학의 발달은 인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퍼킨의 모브 발명과 같은 염료의 개발에서 비롯된 공업화학과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이라든가, 아스피린 개발과 같은 성과로 이어진 의약화학이 그것이다.


20세기 초반은 양자역학의 시대였고,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양자역학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양자역학의 발달을 지금은 대체로 물리학에서 다루지만, 이 양자역학의 등장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화학자들은 그걸 자신의 분야라 여겼다고 한다. 전쟁과 함께, 혹은 전쟁 전후에 고분자화학이 등장하고, DNA라든가 단백질에 대한 구조와 역할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생화학이 꽃을 피우게 된다. 그리고 저자의 전공이기도 한 나노화학이 등장한다.


이렇게 아주 요약해서 간단히 보더라도 화학의 역사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하위 분야를 가지고 있고, 그 하위 분야가 비롯된 시점은 순차적일 수 있지만 서로 양향을 주고받으면서 발달해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인류의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 존재했던 것이 화학이라는 설명도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류가 만들어온 화학의 역사에 대한 헌사이며, 자부심이다. 우리는 화학으로 여기까지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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