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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05. 2021

여행은 냄새로 기억된다

한태희, 《후각과 환상》


다양한 지역을 여행해보지는 못했지만, 학회 참석 등으로 꽤 여러 도시를 방문했었다.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 가장 확실한 것은 냄새다. 같은 국가의 도시도 냄새가 다르다. 그 냄새는 잊혀졌다가도 다시 방문하기 위해 공항에 내리거나, 도시의 거리를 걸으면 “아! 이 냄새!”하고 불현듯 떠오른다. 도시의 냄새는 고유하고, 그 냄새로 도시는 기억된다.


그래서 여행의 기록은 냄새를 중심으로 기록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다. 그런데 냄새를 중심으로 한 여행의 기록이 그다지 흔한 것 같지는 않다. 추측해보건대 여행자들이 느끼는 냄새를 풍부하게 설명해낼 수 있기 위해서는 냄새에 대한 감수성뿐만 아니라 도시와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 냄새를 이루는 물질들과 그 냄새가 인지되는 과정에 대한 과학적 소양을 함께 지녀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후각과 환상》은 바로 그런 다양한 지식과 소양을 지닌 저자이기에 가능한 책이다. 도시와 냄새에 관해 다양한 지점들을 짚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다양한 지점들에서 다양한 것들을 함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 이스탄 역사와 해변 카페에서 파는 고등어 샌드위치 냄새, 그리고 그 냄새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함께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가 이해하고, 기억하는 도시의 모습은 어느 한 가지만으로 규정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다. 거기에 냄새는 감성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다. - “오랜 기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많은 사진과 기록이 남았지만 가장 생생한 것은 여행지의 독특한 냄새와, 그 냄새에 얽힌 감성적 기억이었다.”


저자는 전문 여행가가 아니다. 그래서 여행에 어떤 일관성을 찾기는 힘들다. 왜 그곳에 갔는지 이유도 밝히지 않는다(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여행은 그렇다.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으면서도 여행하다보면 특정한 것에 꽂히게 된다. 그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고, 그것을 통해서 여행을 기억한다. 그렇게 삶은 풍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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