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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13. 2021

생물학이 물리학을 만나다

찰스 S. 코켈, 《생명의 물리학》


우주생물학자 찰스 코켈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개미는 어떻게 거대한 집단을 유지하면서 개미집을 만들어 나갈까?

집단을 이뤄 나는 새들은 어떻게 서로 부딪치지 않으면 날 수 있을까?

무당벌레는 어떻게 중력을 이겨내며 벽을 기어 다닐 수 있을까?

곤충들은 왜 크기가 그 정도뿐일까? (옛날에는 아주 큰 곤충도 있었다는데)

두더지의 생김새는 왜 그럴까? 흙을 굴을 파는 동물들의 생김새는 왜 다들 두더지를 닮았을까?

바퀴 달린 생물은 왜 없을까? 프로펠러로 헤엄치는 물고기는 왜 없을까?

모든 생물의 세포는 왜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모양일까?

생명체가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은 왜 다들 똑같을까? (물론 예외는 있지만)

생명의 부호는 왜 G, A, T, C 네 가지뿐일까? 왜 아미노산은 20가지로 생명을 구성할까?

왜 생명을 구성하는 원소는 CHNOPS일까?


참 어려운 질문들이지만, 찰스 코켈은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생명도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고, 그런 물리학의 제한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윈 이래 진화학자를 비롯한 생물학자는 생명의 진화는 우연성에 의해 이뤄졌다고 했지만, 찰스 코켈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우연성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사실상 부차적인 문제이며,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물리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진화를 부인하지도 않으며, 생명 현상의 다채로움에 눈을 감지도 않는다(그는 엄연히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트레이닝을 받은 생물학자다). 하지만 생명 현상에 물리 법칙이 관여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생명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본질적인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생물학과 물리학이 행복하게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여기며,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견해가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찰스 코켈을 우주생물학자이다. 우주생물학? 그러려니 할 때는 넘어갈 수 있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좀 난감한 분야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 분야는 N=1문제에 봉착해 있다. 표본이 1개뿐인 생물학.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엄격하게 말해 연구할 대상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주생물학자는 무엇에 관심을 가질까? 바로 이런 내용이다. 생물이 어떤 조건에서 탄생하고 진화하는지, 어떤 제한 속에서,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가지고 존재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다양성이 용인되는지 등등. 그래서 추론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지구 상의 생물이 어떤 물리적 조건 속에서 존재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통할 수밖에 없다. 찰스 코켈은 다소 온건한 입장이긴 하지만, 이러한 연구는 지구 밖의 생명체도 탄소와 물에 기반한 생명체일 수밖에 없는 결론에 다다른다. 또한 생김새도 행성의 크기나(이는 중력을 결정한다) 기체 밀도에 따라서 결정될 것인데, 이 역시 지구의 생물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당히 재미있는 것은 이런 연구가 생명의 경이로움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명 현상을 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슈뢰딩거의 최초의 시도(《생명이란 무엇인가》) 이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시도는 DNA 구조 발견 등으로부터 생명에 대한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고 생명의 아름다움, 경이로움을 돋보이게 했다. 여기에서와 같이 생명은 복잡하지만, 그것들이 일관된 단순한 법칙 내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설명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학문의 발전은 당연히 만남에서 나온다. 경계에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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