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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17. 2021

주제 사라마구의 마술적 사랑 이야기

주제 사라마구, 《수도원의 비망록》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왕의 전쟁에서 왼쪽 팔을 잃은 사내 발타자르와 마녀의 딸이자 다른 이의 영혼을 들여다볼 줄 아는 블리문다이다. 그러니 이 소설을 구분하자면 러브 스토리이다. 그러나 주제 사라마구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 많은 이야기를 덧붙여 놓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그 많은 이야기들의 배경처럼.


이 소설은 또한 역사소설이다. 유럽 역사의 오점 중 하나인 마녀재판과 종교재판이 그들의 사랑을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만남 자체가 비극이었고, 기이했듯이 그들의 마지막도 비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받아들이면 될까?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시대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시대에 대한 비평서이다. 18세기 포르투갈의 대역사인 마프라 수도원 건립의 동기는 지배 계급의 허위의식을, 그 수도원을 건립하는 과정은 피지배계급에 대한 착취를 폭로한다. 그래서 마프라 수도원은 (사진으로) 지금 보아도 웅장하고, 관광객들을 불러모으지만,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거기에는 왕궁의 허위의식과, 교회의 탐욕과, 피지배계급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이다.


사랑 이야기이고, 역사를 담고 있지만, 또한 이 소설은 모험담이고 판타지이다.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드는 바스톨로메우 신부의 시도는 다분히 역사적이지만, 그 동력이 인간의 영혼(의지)라는 것은 이 소설을 단순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늘을 나는 것, 지금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 되었지만, 그것은 실은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계적 동력만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수없이 모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단으로 몰릴 여지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남들은 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힘겹게 읽었다. 더 길게 이어지는 문단으로 구성된 《눈먼 자들의 도시》나 《눈뜬 자들의 도시》보다 더 힘겨웠다. 주제 사라마구의 역사적 상상력을 따라가기 바빴다고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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