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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Oct 10. 2021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한 50년

마틴 켐프,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와 함께 한 50년》

마틴 켐프는 자타공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생물학을 전공하던 중 예술사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운명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났고 평생을 그의 예술을 연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그와 함께 한 50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권위자로서 그의 삶과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그런 책으로는 월터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대신 자신이 다빈치를 연구하면서 그를 만난 여러 지점들과 논쟁에 얽힌 사연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른바 ‘레오나르도 다빈치 산업(Leonardo Da Vinci Industry)’라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산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연구하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예술품 중개인, 미술관, 큐레이터, 수집가들, 출판 관계자, 중앙 정부 및 지방 정부 관계자, 아마추어 숭배자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 있는 복잡한 세계다. 저자는 이 산업이 번창해가는 모습과 함께 그 안에 벌어지는 논란과 협잡 등을 수십 년 간 지켜봤다. 


마틴 켐프는 우선 <최후의 만찬>의 복원을 둘러싼 여러 논쟁과 소동을 2개 챕터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최후의 만찬>은 프레스코 기법으로 작업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서 안료가 떨어져 나가고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의 폭격 속에서도 겨우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아 대중에게 보여진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원형을 찾기 위한 복원을 결정한다. 1977년부터 1999년 무려 22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복원 작업은 여러 논란을 가져왔다. 원형을 파괴했다는 공격이 여기저기서 나왔고 대중들이 분노하기까지 했다. 마틴 켐프는 그 과정을 이야기하며 예술품 복원이라는 걸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할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원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한다면 그 원형에 대한 복원 시도가 옳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두고 사라지는 편을 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정답은 없다. 


그 다음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 <모나리자>에 대한 얘기다. 오랜 논쟁인 <모나리자>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한 것과 <아이즐워스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작품이 정말 ‘모나리자’인지에 대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고 대가 중 한 명인 마틴 켐프도 <모나리자>를 직접 본 것은(방탄유리 너머로가 아니라) 두 차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접하기 힘든 작품이다. 마틴 켐프는 <모나리자>의 모델이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Francesco del Giocondo)라는 것을 적극 옹호하면서도 실제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이상적 여성의 표상으로서 ‘리자’를 그린 것이라는 얘기다. 모나리자 뒤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른바 제2의 모나리자라 불리며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즐워스의 ‘모나리자’>에 대해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른바 다빈치의 경우에는 ‘펜티멘토’라고 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수정한 특유의 흔적이 남는데, 그런 것들이 없을뿐더러 느낌 자체도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성모와 실패>라는 작품의 경우에는 두 개의 작품이 모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즉 원작이라고 판단한다. 스코틀랜드의 드럼랜드 성에서 버클루 공작이 소유하던 작품에 대해서 영국의 국립미술관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그 작품이 모작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이후 2003년 그 작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4년 만에 경찰이 회수한 작품에 대해 그것이 원래의 작품인지, 진짜 레오나르도의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이가 마틴 켐프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틴 켐프의 입장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작품은 아마도 그가 직접 작품의 제목을 붙이 <아름다운 왕녀>라는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수도 없이 나오지만 실제로 진품으로 밝혀지는 경우는 드물다(<아이즐워스의 ‘모나리자’>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9세기의 작품이라고 알려졌던 한 작품을 감정하고는 이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 작품이 바르샤바 도서관 고문서실에서 <스포르자다(Sforziada)>라는 책에서 뜯겨진 것이라는 증거를 찾는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진품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뜨겁다. 여전히 마틴 켐프는 이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며,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그 작품이 다음에 소개하고 있는 <살바도르 문디>와 달리 논쟁에 휘말리게 된 이유(발표 시점까지 비밀이 지켜지지 못한 점, 발표가 상업적인 장소에서 이뤄진 점 등)에 대해서 아쉬워 한다. 


<아름다운 왕녀>와는 달리 <살바도르 문디>는 이제 거의 다빈치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195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겨우 45파운드에 팔렸고, 미국에서는 1만 달러에 거래되던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이름이 붙자 2017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 5,3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마틴 켐프는 이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이 감정하게 되었는지, 어떤 이유로 다빈치의 작품이 확실한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마틴 켐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과 맺은 몇몇 중요한 인연들에 대한 예술적 얘기였다면 그 다음은 예술적인 내용은 조금 빠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시회를 준비했던 경험에 대한 얘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그러니까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전시회로 불러내는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비롯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에서 암호를 찾으려는 시도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댄 브라운 작품에 기대면서 그의 설명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데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한다. 그것은 그냥 소설일 뿐이며,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가설들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듯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이름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냥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분명 실체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한 50년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 어떤 순서를 가지고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그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매우 특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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