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킹,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피에타’와 ‘다비드’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던 조각가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맡는다. 프레스코 기법에 익숙치 않았던 조각가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여겨 피렌체로 도망갔지만 거의 협박에 가까운 회유에 응한다. 4년 넘는 동안 작업 끝에 드러난 작품은 당대부터 불후의 명작으로 칭송받았지만, 온갖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것이었다. 그 조각가이자 화가는 미켈란젤로였다.
로스 킹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를 완성하기까지와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로스 킹의 시선은 미켈란젤로와 그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폭군’이라 불렸던, 교황이라기보다 전제군주와 같았던 교황 율리우스 2세, 당시 새파랗게 젊은 나이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라파엘로(그는 미켈란젤로와 용모에서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달랐다. 로스 킹은 라파엘로에 대해 상당한 애정을 가진 듯하며 미켈란젤로에 대비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서술하고 있다), 조각을 천시하며 미켈란젤로와 대립하면서도 서로 존중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종교의 광기로 피렌체를 지배했다 화형을 당한 수도사 사보나롤라(그는 미켈란젤로의 종교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주역 에라스무스, 거기에 마키아벨로, 루이 12세, 체사레 보르자 등 당대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대립과 논쟁, 화해를 세심한 눈길로 조망하고 있다.
또한 미켈란젤로의 가족에 대한 얘기들은 예술가가 현실의 세계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그게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까지도 잘 보여준다. 미켈란젤로의 고민은 어떻게 율리우스 2세로부터 제대로 돈을 받아낼 수 있을지, 골칫거리인 아버지와 동생들을 어떻게 다독일지와 같은 것들이었다. 예술에 대한 고민? 물론 예술에 대한 고민도 있었겠지만, 더 실제적인 고민은 그와 같은 것들이었다는 걸 보며 미켈란젤로가 조금은 친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졌다. 프레스코(Fresco) 기법이란, 벽에다 마른 회반죽에 안료를 섞어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그림이 벽의 일부가 된다. 미켈란제로는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배우기는 했지만 이 기법에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 <노아의 홍수> 부분을 제작할 때는 미숙한 면이 없지 않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개발하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원숙한 솜씨를 드러냈다고 한다. (다 빈치도 그랬듯이) 시체 해부까지 하면서 이해한 인체 구조를 그림에 그대로 적용했고, 역동적인 인물들, 비탄에 젖은 인물 등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들어낸다. 성서 속 이야기라는 경건한 주제임에도 천지창조 옆 그림에는 악동들이 손가락으로 욕하는 장면 같은 것을 그려 넣어 나름의 세상에 대한 조롱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를 제작하는 과정은 몇 가지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 준다. 일단 그가 프레스코에 통달한 화가로서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란 점에서부터, 홀로 이루어진 고독한 작업이 아니라 조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 비계에 등을 대고 누워 정말 힘들게 작업한 것이 아니란 것(물론 고개를 젖혀, 팔을 쳐들고 작업하는 게 편안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리고 그 작품이 르네상스라는 화려한 시대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어지러운 정세를 뚫고 제작된 것이라 것 등등 우리가 그 작품을 우러러보며 감탄을 하면서도 생각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