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Oct 07. 2021

패배자들을 기억하라

유필화, 《위대한 패배자들》


역사는 승리자들이 기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히 그 기록은 매우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승리자들이 뛰어났기에 그런 위치를 다다를 수 있었겠지만, 패배자들이라고 승리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스스로 당당한 패배자의 길을 걸은 이들이 있고, 살아서 승리자였다 죽은 후 패배자로 기록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역사에서 승리자와 패배자의 구분은 인위적이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유필화 교수가 꼽고 있는 ‘위대한 패배자들’은 그런 인위적이고 주관적인 승리자-패배자의 구분을 상기시킨다. 

그가 다루는 여덟 명은 대체로 살아서 성공의 길을 걷다 최후에 좌절당하고 패배자로 기록된 인물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 남송의 장군 악비, 러시아 혁명의 풍운아 트로츠키, 2차 세계대전의 영우 롬멜, 소련 개혁과 붕괴의 주역 고르바초프가 그런 인물들이다. 반면에 리지웨이 같은 경우에는 기억되어야 할 만큼의 공(公)을 세웠지만 잊혀졌다는 의미에서 언급되고 있는 인물이고, 명(明)을 세운 주원장과 한(漢)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한 무제는 죽을 때까지 승리자로서 기록되었지만, 죽어서 평가가 달라진, 혹은 평가가 분분한 인물들이다. 그러고 보면 뒤의 셋은 앞의 다섯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봐야 할 인물들이다. 


앞의 다섯이 패배자로서 기록되게 된 과정은 서로 다르다.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영우에는 페리클레스에 가려져 있는 인물이지만,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은 살라미스 해전 승리로 아테네, 나아가 그리스를 구한 영웅이었다(그마저도 대중적으로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에 가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 이후 권력 투쟁에서 패해 결국은 적극 페르시아에 투항할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명예와 지독한 불명예의 삶을 동시에 살고 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악비의 경우엔 출중한 장군이었으나 오히려 그 출중함 때문에 모함을 받고 죽임을 당했는데, 나아감과 물러섬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이 옳음만을 강하게 믿었던 탓도 있었다고 평가된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에서 오히려 레닌보다 더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결국에는 엘리트 리더의 한계를 보이면서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고 암살을 당한다. ‘사막의 여우’라 불리며 연합국의 장군들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던 롬멜은 히틀러 암살 모의 사건에 연루되어 자살을 강요받고 죽게 되는데, 영웅으로서의 면모와 기회주의자로의 면모 사이에서 명확하지 못했던 처신이 그러한 몰락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고르바초프는 거의 당대의 인물이랄 수 있는데, 의도야 어쨌든 소련의 개혁을 주도했지만 결국은 그의 우유부단함과 판단 착오가 제국의 몰락을 가속화되게 된다. 그러나 소련 몰락의 주인공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는 그가 패배자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다. 퇴임 후의 처진, 즉 서방 세계에서 영리 목적으로 강연을 하고, 기념물 제막식에 베일을 벗기는 인물로, 축하 행사의 얼굴 마담으로 등등 자신의 이름을 팔고 다니면서 자신의 가치를 모조리 없애버렸다고 할 수 있다. 


리지웨이는 정말로 잊혀진 인물이다.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맥아더는 알지만 리지웨이는 모를 것이다. 유필화 교수에 따르면 리지웨이야말로 한국 전쟁을 온건하게 맺을 수 있게 한 ‘대한민국의 진정한 은인’이다. 맥아더의 모험적인 성격과는 달리 이성적인 판단과 현장주의가 어우러져 전쟁을 관리해냈다. 잊혀졌다는 의미에서 패배자의 대열에 합류시켰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패배자라는 데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사실 주원장이나 한 무제도 패배자라고 보는 데는 큰 무리가 따르지 않나 싶다. 거지 승려에서 명이라는 제국을 일군 주원장이고, 한 무제도 한나라를 가장 큰 영역을 지닌 제국으로 만든 인물이며, 죽을 때까지 영화를 누렸다. 다만 주원장은 결단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잡은 이후 열등감의 발로인지 분서갱유(焚書坑儒) 못지 않은 ‘문자의 옥(獄)’과 같은 사건을 통해 수만 명의 공신들을 전멸시킴으로써 후대의 평판을 떨어뜨렸고, 한 무제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왕위에 오른 탓인지 늙을수록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유필화 교수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역사의 평가에서 패배자인 셈인데, 사실은 명이라는 나라도, 한이라는 나라도 주원장, 한 무제 이후 꽤 오랫동안 유지되고 번성했다는 사실을 볼 때 그들의 과오는 패배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 싶다. 


유필화 교수는 이렇게 다양한 이유에서 패배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을 조망하고 있다. 다양한 의미에서 패배자이지만 공통점도 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또한 사회에 대해, 국가에 대해 최선을 다해 살아갔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아무것도 안했다는 의미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회피하고, 도망감으로서 패배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패배자로 규정지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만, 그렇게 기억될 만 한 패배자가 된 것은 그들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에서, 그들의 패배에서 우리가 건질 것들이 많다. 

작가의 이전글 그들의 잘못을 통해 우리는 배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