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과 유지원의『뉴턴의 아틀리에』
‘다정스런 물리학자’ 김상욱과 ‘타이포그래픽 전문가’ 유지원이 함께 작업한 책의 제목이 ‘뉴턴의 아틀리에’. 제목에서부터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간다. 저자들도 맨 앞에서부터 설명하고 있듯이 뉴턴은 과학자이고, 아틀리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장이다. 과학자로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분야, 그리고 남의 분야에 대한 생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융합되지 않는다고 많이들 생각하는 두 분야가, 실은 서로 아주 가깝다는 것을 둘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더 큰 관심이 가는 쪽은 (대중적으로 더 유명한) 김상욱이 아니라, 유지원 쪽이다. 『글자 풍경』이라는 전작의 느낌 때문에도 그렇지만, 더 큰 이유는 궁금해서다. 과학자가 예술에 대해서 쓰는 것은 흔하지는 않더라도 그리 드물지는 않다. 에릭 켄델이 뇌과학과 추상화를 (인상 깊게) 연결시킨 예도 있고, “미술관에 간 ~” 시리즈로서 화학자, 수학자, 의학자, 물리학자(!) 들도 있다. 그러니 김상욱이라는 물리학자가 예술에 대해서 그들과는 조금 달리 썼겠지만, 미리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신 예술 쪽의 인사가 과학에 대해서 제대로 쓰기는 쉽지 않다. 이게 선입견이고 편견일지 모르지만, 그 선입견과 편견을 입증시키는 예는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그들이 과학에 대해서 언급하더라도 잘못된 개념에 바탕을 두거나, 혹은 아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는’ 유지원은 어떨까? 그게 궁금했다.
짧은 글들에서 유지원의 과학 실력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과학에 대한 이해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엔트로피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세포막의 특성과 기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튜링의 업적도 잘 파악하고 있다. 더 중요하게는 과학을 잘 아는 예술가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식이 아니라 현대 과학의 성과와 흐름, 그 양태를 예술에 적용시킨 예들을 보여주고 있고, 스스로 그것을 응용한 프로젝트를 학생들과 수행하기도 한다. 모든 글에 과학적 내용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자신의 전공인 서체에 대한 얘기만 하기도 하고, 음악에 대해서만 얘기하기도 한다. 늘 부지런히 사고하고, 읽고, 자유롭게 적용하는 그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가장 인상 깊은 글을 꼽는다면 “점, 마침표는 쉼표를 낳고…”다. ? 이 짧은 글에서 동양과 서양의 서체의 특성, 마침표와 쉼표의 제작 원리, 거기에 쿼크, 양성자, 중성자를 등장시킨다).
김상욱은 다소 전형적이다. 주로 그림을 두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다. 이를테면 ‘점’에 대한 글에서는 (상당히 예상이 가능하게) 조르주 쇠라의 그림(점묘버)을 꺼낸다. 예상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피카소의 그림을, 밀레의 그림을 앞에 두고 그 감상을 써낸다. 물론 거기에 과학을 넣는다. 과학자도 그림을 좋아하고, 심지어 과학자는 그것을 과학으로 풀어낼 수 있다. (나도 과학자라는 명칭을 붙이고 살고 있으므로) 싫지는 않지만, 역시 끌리는 쪽은 과학자가 아닌 쪽이 과학을 (제대로) 끌어온 경우다.
그래도 좋았다. 하나의 단어를 모티브로 하여 얘기하는데 둘이 비슷한 얘기를 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생각의 보편성을 깨닫게 되었고, 또 아예 딴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는 생각의 다양성을 엿보았다. 서로가 끌고, 끌리고, 서로 어우러지고, 혹은 서로 밀어낸다. 이 정도면 둘은 충분히 자신들의 의도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