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윈체스터의 『완벽주의자들』
인류의 역사, 혹은 과학, 산업의 역사는 정밀함과 정확함을 추구해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그 속도는 느렸지만, 어느 지점을 지나면서는 정신 없으리 만큼 빨라졌고,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것은 필요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욕망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이먼 윈체스터가 정밀성의 역사에 대한 책의 제목을 ‘완벽주의자들(The Perfectionists)’라고 지은 것은, 단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완벽한 정밀성, 정확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다르지 못할 지점에 대한 끊임 없는 갈망 같은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인텔의 칩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허용 오차를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에 다다랐다고 하고 있어, 과연 이 수치가 실제 가능한 것인지, 혹은 상상으로만 가능한 것인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지만 이 역시도 0(zero)는 아니다. 말 그대로의 의미로는 완벽하지 않다는 얘기다. 산업 혁명 시기 이래로 놀라운 천재들과 끈질긴 연구자, 기술자들이 추구해온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들 역시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들은 ‘완벽자(Perfect Man)’가 아니라 ‘완벽주의자들’이었다. 추구할 가치로서의 완벽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정확성과 정밀성의 구분이다.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서 책의 앞머리에서부터 저자가 잘 정리하고 있는데, ‘주의와 주목’을 뜻하는 어휘에서 온 ‘정확성(accuracy)’는 무언가의 진정한 가치를 최대한 가깝게 묘사하거나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분리와 연관된 의미들에서 생겨난 ‘정밀성(precision)’은 미세(minuteness)라든가 세부(detail)이라는 의미들과 연관이 있으며, 핵심 가치가 아니더라도 최대한 세세하게 묘사하고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정확성은 목표로 하는 가치에 충실한 것이고 정밀성은 그 행위 자체에 충실한 것이다.” 그림의 과녁을 비유로 들자면, 가운데에 가깝게 총알이 집중되는 것이 정확성이라면, 정밀성은 어디든지 탄착 지점이 몰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확성과 정밀성은 일치할 수도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이먼 윈체스터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은 분명 ‘정밀성’이다. 옳은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오차를 줄이느냐는 것이 관심 사항인 것이다.
정밀성의 역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무척 쉽지 않은 문제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 분야에서 점점 더 정밀해지는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해 나갈 수 있다. 또는 현대의 정밀한 분야들을 모아 놓고 ‘이런 정도다!’라고 놀라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사이먼 윈체스터가 추구한 방식은 연대기적이면서도, 연대기적인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허용 오차가 극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대체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기술하고 있으면서도, 그 서술하고 있는 분야를 서로 달리 하고 있다. 와트의 증기 기관을 가능하게 한 윌킨슨의 신기술(허용 오차 0.1인치)에서 시작하고 있다. 물론 인류 최초의 정밀한 도구라면서 고대의 안티키테라 기계를 언급하고는 있지만, 정밀성의 역사는 바로 산업의 역사라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기계를 만드는 기계를 고안하고, 호환 가능한 부품이라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해낸 헨리 모즐리로 넘어간다. 그를 ‘산업 시대의 창조자’라고 부르는 것 역시 정밀성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추구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짚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무엇일까? 바로 총과 시계다. 시계는 쉽게 이해가 가지만, 총? 이런 생각이 들지만, 총이야말로 앞에서 헨리 모즐리가 처음 시도하고 성공한 호환 가능한 부품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무기를 부품으로 제작하여 갈아 끼운다는 발상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시도하고 성공함으로써 전쟁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물론 사이먼 윈체스터가 전쟁의 피해에 대해서 깊게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밀성의 역사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어쩌면 정밀성에 대해서 무슨 얘기가 가능할까 하는 자동차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롤스-로이스와 포드의 T-모델을 비교한다. 둘다 정밀성에 관해서 일대 도약을 이룬 자동차라는 의미에서는 동일하지만, 그게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롤스-로이스를 개발한 헨리 로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동차의 가치를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최고급 자동차를 만드는 데 집중한 반면, 헨리 포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자동차를 이용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두 목표 모두 정밀성을 요구하는 과제였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를 “예술가를 자처하는 기술자가 꼼꼼하고 유연하게 정밀성”과 “개혁가를 자처하는 기술자가 매몰차고 단호하게 이용할 정밀성”이라고 칭하면서 서로 다른 정밀성의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일단 모두 성공했다.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롤스-로이스가 망했으므로 그 방향의 정밀성이 패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또 다른 고가의 수제품들이 여전히 부자들의 선호(나아가 부자가 아닌 이들의 부러움)를 받는 것을 보면 여전히 두 방향의 정밀성은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제트 엔진이나 카메라의 얘기를 거쳐 저자는 ‘당연히’ GPS의 세계와 반도체 칩의 세계로 접어든다. 말해 무엇 하겠나 싶다. 그것들은 현대 과학의 총아다. 그러므로 가장 최고의 정밀성을 추구하며 보장한다.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는 초현대 문명이 어떤 기반 위에서, 어떤 정밀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GPS도 반도체 칩도 그 정밀성의 한계를 정해지는 게 설명의 차원의 아니라 목표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지나치게 정밀성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 사이먼 윈체스터는 ‘균형’을 이야기한다. 그가 균형을 위해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일본의 시계 세이코(SEIKO)와 칠기 공예를 대비시킨다. 반도체 칩에서 세이코의 정밀성으로 차원을 낮춘 것이나, 왜 칠기 공예를 더듬었는지는 조금 의아한다. 요새의 감정(이성인가?) 때문에 덤덤히 읽지는 못하지만, 사실은 그냥 무심히 읽고, 그냥 공감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그냥 우리의 예로 치환시켜 이해해도 별 문제는 없다. 저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밀성의 역사는 사실 숨가쁘다. 숨 막힌다. 이런 세계에서 숨을 쉬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며, 조금은 정밀함에서 초연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끝에 보니 사이먼 윈체스터의 아내가 바로 일본 출신이다. 이해할 만하다).
인간이 얼마다 더 작은 오차를 허용하며, 정밀함에 목숨을 걸지는 모른다. 아마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 세상은 또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정밀함을 추구해온 역사를 통해 증기기관이, 무기가, 시계가, 비행기가, 자동차가, GPS가, 반도체 칩이 우리 삶을 바꾸어 온 것을 보면, 또 예상치 못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말하자면, 정밀함의 역사는 앞으로도 혁명의 역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