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다’, 혹은 ‘과학한다’라는 동사가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과학을 한다’라는 말에서 목적격 조사를 빼고 만든 말이고, 또 명사에 어미를 붙여 없던 말을 만들어내는 게 요즘 어법인 셈이니, ‘과학하다’는 말도 가능할 수 있겠다 싶다. 무슨 의미인지도 알겠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나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깊게 들여다 보면 잘 대답할 수 없다. ‘과학한다’, 내지는 ‘과학을 한다’는 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과학’이라는 활동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내포되어 있다. 그건 우리가 과학이라고 인정되는 활동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 활동의 결과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자세 또는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범위도 마찬가지다. 과학에는 이른바 그것의 응용이라고 하는 공학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종종 제외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회과학이라고 하는 분야가 포함되기도 한다. 과학은 그것의 본성이 매우 명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 자체로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전주홍 교수는 과학이라는 활동을, 그 활동이 벌어지는 실험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상당히 좁은 범위의 과학을 상정하고 있다. 공학이라든가, 사회과학 등은 제외되며, 실험실 중심으로 한 과학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론과학도 제외된다. 실험을 위주로 하는 과학 중에서도 전주홍 교수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분야는 의생명과학이다. 그의 전공 분야가 거기에 속한다. 사실 ‘의생명과학’(아마 영어로는 biomedical science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이라는 분야 이름 자체도 오래되지도 않았고, 또 익숙하지도 않다. 생물학(biology), 혹은 생명과학(life science)과 의학(medicine)의 결합인 셈인데, 이것의 범위도 좀 애매하기도 하다. 아무튼 여기서 대상으로 삼고 얘기하는 것은 바로 그 분야, 의생명과학이다.
의생명과학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과학에 관해 매우 협소한 부분만 이야기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장 익숙한 분야(사실은 내게도 그렇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결국은 과학의 보편적인 부분으로 확장될 수 밖에 없다.
전주홍 교수는 실험, 그리고 그 활동이 벌어지는 실험실을 중심으로 과학 활동을 이야기한다. 실험이라는 것은 대체로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자연의 비밀을 알아내는 활동을 말한다. 실험실은 바로 그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오늘날의 의생명과학은 실험실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다. 실험실의 역사와 그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과학 활동의 시작(‘가설 설정’), 실제 실험실에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그 실험실에서 벌어진 일들을 정리해서 비로소 세상에 가치 있는 물건으로 내놓은 논문 쓰기까지의 과정들을 소개되고 있다. 최근 홍성욱 교수가 《실험실의 진화》라는 책을 내놓은 바 있는데, 홍성욱 교수의 책이 실험실에 대한 연구라면(그는 실험실을 시험적으로 경험했을 뿐, 실험과학자는 아니다), 전주홍 교수의 이 책은 실험실을 자신의 근거지로 삼아 과학자라는 경력을 쌓아나가야 하는 이들을 위한, 실험과학자의 것이니 만큼 훨씬 현장감이 느껴진다.
그런 실험실과 실험에 대한 이야기, 결국 과학에 대한 얘기의 끝은 과학이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과학이 단지 그것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의 먹고 사는 문제와는 별도로 과학이라는 활동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실험과학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활동의 규범이 어떻게 마련되었으며, 그 규범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원대한 기획으로서 과학을 한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게 직업이 되어버린 지금, 십수년 실험실을 운영해온 지금, 과학을 처음 시작할 때, 실험실이라는 낯선 곳에서 다짐을 하던, 가슴 떨리는 느낌을 잊었었다.
*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발표했던 글 중심이라 반복되는 얘기가 있다는 점, 2장의 각주(참고문헌)가 24번 이후로 통째로 사라져버린 점, 그리고 이산화 탄소의 화학식이 어이 없게 표시되어 있는 것과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 오자가 몇몇 보인다는 점 등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