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첫 번째 세포에 집중하자!

아즈라 라자, 《퍼스트 셀》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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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라 라자는 파키스탄 태생의 미국 종양 전문의다. 암 중에서도 특히 전백혈병 단계인 골수형성이상증후군과 이 증후군이 발전한 단계인 급성백혈병을 연구한다. 그녀는 암 연구의 패러다임에 대해 비판한다. 현재의 암 연구는 주로 분자생물학적 방법론에 기초해서 동물 세포와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을 위주로 진행된다. 표준적인 연구 방법론에 기초한 연구계획서라야 연구비를 받고, 주요 저널에 실린다. 주요 저널에 실려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고,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그런 연구 결과들은 종종 과학 뉴스, 혹은 좀 더 센세이셔널하다면 일반 뉴스에서 암 치료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보도된다. 그런 연구 논문들과 뉴스의 전망을 따르자면 벌써 우리는 암을 정복했어야 한다. 하지만 암 치료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베고(외과수술), 독을 주입하고(화학요법), 태운다(방사선요법)‘ (최근의 면역항암제는 이와는 구별되는 치료법이지만,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암에 대한 생존률이 높아진 것은 흡연에 대한 경고와 일부 암을 조기에 발견함으로써 이뤄낸 성과이지 암 자체에 대한 연구로 이뤄진 성과라고 할 수는 없다. 아즈라 라자에 따르면, 쥐를 대상으로 이뤄낸 연구 성과의 95%는 실제 환자 치료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해 사장되며, 나머지 5%는 겨우 몇 주, 몇 달의 생존을 늘려줄 뿐이다. 제한된 연구비의 대부분이 이렇게 쓰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아즈라 라자는 이에 대해 묻는다.


그래서 그녀는 실제 환자로부터 얻어낸 조직 샘플을 모았다. 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에게서 직접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며, 또 연구 재산이다. 또한 그녀는 암의 마지막 세포가 아니라 첫 번째 세포(the first cell)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 세포란, 암으로 전환되기 전의 세포를 말한다. 그 세포들이 내놓는 표지를 알아내서 그것을 탐지한다면 암으로 전환되기 전에 치료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그녀가 전백혈병 단계인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연구하고, 치료하기 때문이다. 만약 골수형성이상중후군의 초기 단계에서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한다면 급성백혈병 단계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훨씬 예후가 좋을 것이라는 경험적 근거에서다. 그리고 모든 암이 그렇진 않겠지만, 그렇게 치료할 수 있는 암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는 단순히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한 암의 조기 진단과는 좀 결이 다른 얘기다. 물론 암 조기 진단은 일부 암에 대한 치료 효과를 획기적으로 증가시켜(특히 유방암이라든가, 대장암 등), 전체적인 암 치료율을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암으로 진행된 후에 찾아냄으로써 여전히 ‘베고, 독을 주입하고, 태우는’ 치료 요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암에 대한 조기 진단이 아니라, 암 이전의 이상 세포를 찾아내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그녀가 분자생물학이나, 동물 모델을 이용한 연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연구들은 수십 년 동안 암을 비롯한 많은 질병에 대해 이해를 획기적으로 증진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이를 인정하면서도 어떤 연구가 실제적으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자원의 재배분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녀는 각 장의 제목을 자신과 함께 했던 환자의 이름으로 지었다(거기에는 남편도 포함되고, 딸의 친구도 포함되어 있다). 자신이 치료하고 함께 했던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왜 암에 대한 연구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뒷받침한다. 과학과 의학의 힘을 신뢰하며, 의지를 지니고 있었던 그들이 암이라는 질병에 희생되어 가는 과정은 암이란 절대 일부의 연구와 한두 가지 발견으로 쉽게 정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은 그녀의 동료이기도 한 싯타르타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와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 등을 함께 읽는 느낌이다. 살고, 죽어가는 것이 숭고하고도 안타까움과 함게 암이라는 정체에 대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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