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게 무리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어렸을 땐 아무래도 꺼려졌고, 그 이후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2010년도에 《1Q84》를 먼저 읽었고, 그 후로 《기사단장 죽이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여자 없는 남자들》, 《일인칭 단수》까지 읽었다. 에세이로는 《이윽고 슬픈 외국어》와 《고양이를 버리다》가 내 독서 목록에 들어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광적인 팬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이 새로 나오면 관심을 갖게 되는 정도에는 이르렀다. 과거의 작품도 기회가 되면 읽을 생각이다.
2015년에 출판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국내에는 2016년 번역 출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소설과 소설가로서의 자신에 대해서 쓰고 있다. 강연 형식이지만 그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형식을 띤 것이지 강연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다른 소설 쓰기도 그렇듯이 어떤 잡지 등에서 의뢰받아서 쓴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미 썼던 글을 기회가 되어 일부 발표했고, 나머지까지 합쳐서 책으로 펴냈다. 아무래도 통상적이진 않다.
그가 대학 졸업 전에 결혼하고, 가게를 운영하다 어느 날 프로야구 낮 경기를 외야에서 보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타자 데이브 힐턴이 친 2루타를 보다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게 되고, 그렇게 쓴 소설이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여기서는 그 전후의 상황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지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연관도 되지 않는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기지 않지만, 믿을 수 밖에 없다. 소설가로서의 수련 기간도 없이 자신의 문체를 만들어 간 과정은 흥미롭다. 사실 번역된 그의 글이 매우 친숙하게 여겨지는 것은 번역가의 공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영어를 매개로 해서 만들어낸 문체가 번역에 어울리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풀어 놓는데,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규칙성’에 대한 얘기다. 소설을 쓸 때 그는 일찍 잠에 들고, 다음 날 일찍 잠에서 깨어 오전 동안 대여섯 시간동안, 매일매일 원고지 20매 가량을 쓴다고 한다. 잘 써지는 날 발동이 걸려 많이 쓰는 것도 아니고, 잘 써지지 않으면 그냥 두었다가 잘 써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마치 배당받은 분량을 채우듯 매일 20매를 채운단다. 그런 규칙성을 통해 그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매일 하는 달리기도 빼놓을 수 없다. 굳이 다른 소설가들과 어울리려 애쓰지 않고, 자신의 방식을 통해 소설을 쓰고, 자신의 생활 방식을 꿋꿋이 고수하며 독자들과 소통한다. 그 소통의 방식도 거의 작품을 통한 것이지, 미디어를 통한 것이 아니다. 그걸 표준적인 방식이라 소설가를 꿈꾸는 이에게 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은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쓰고, 소설가가 되었으니, 다른 이들은 자신의 방식을 찾으라는 식이다.
또 한 부분은 그의 소설이 러시아 등 외국에서 인기를 얻게 되는 시기에 관한 얘기다. 그는 ”각 나라의 사회 기반에 뭔가 큰 동요(혹은 변용)가 일어난 뒤에“ 자신의 책이 널리 읽히는 것 같다고 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동유럽은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 이후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도 피력하는데,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리얼리티에 강력한 영향을 미쳐, 새로운 스토리, 새로운 메타포 시스템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이는 그렇다면 왜 꼭 무라카미 하루키였나? 하는 질문에는 답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거대 서사가 무너지고 난 후, 안으로 움츠려 들면서 개인적인 문제에 천착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 나라에서는 그런 문학이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그런 소설을 써왔는데, 마침 그의 소설의 그 나라에 진출해 있었던 것이다(그건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의 혜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시기를 보아도 그렇고, 그 물결리 훑고 지나간 이후 우리나라 소설들의 지형이 어찌 변했는지 봐도 그렇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전형적인 루트를 타지도 않고, 소설가가 된 이후에도 보편적인 행로를 걷지 않은 독특한 소설가다. 하지만 그런 독특한 경로를 통해서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어간, 보편적인 소설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