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소설 사이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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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설(Science Fiction) 분야의 온갖 상을 휩쓸며 이른바 ’SF계의 보르헤스‘라 불리는 테드 창의 여덟 편의 중단편을 읽으며 과학자가 과학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Science와 Fiction의 결합이라니. 그동안 별로 의심해보지 않은 이 조합에 대해서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가장 뛰어난 현역 과학소설가의 작품이 되어버렸다. 그건 여기의 작품들이 무척이나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작가의 뛰어난 ’과학적‘ 상상력은 그것을 문자화해낸 소설가로서의 솜씨와 결합하고 있다. 수학의 논리성, 불멸성에 대한 의문을 다룬 <영으로 나누면>과 새로운 의사소통과 인지 방식을 다룬 <네 인생의 이야기>은 그런 만남이 가장 행복한 작품이다. 그리고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대단히 짜릿하고도 논쟁적인 소재를 통해 다른 것들까지도 생각해볼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다른 작품들에선 바로 그 소설적 꼼꼼함 때문에 상상력이 과학의 외피를 입고 있되 과연 과학적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를테면 골렘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온 게 분명한 <일흔 두 글자>라든가, 천사의 존재를 가정하고 있는 <지옥은 신의 부재>와 같은 작품은 상상의 전개 방식이 과학의 방법을 따르고 있는 듯 하지만, 그 내용을 ’과학적으로‘ 도저히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나의 반응이 어쩌면 직업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과학을 업(業)으로 삼은 자, 즉 과학자이기 때문에 실재의 것에서 지나치게 벗어나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 말이다. 상상력이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인지적 굴레와,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도 특정한 형식을 따라야 한다는 직업적 규범 때문에 이 뛰어난 ’과학 소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과학 소설‘을 ’과학‘으로 읽을 것인가, ’소설‘로 읽을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여러 차례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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