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최소한의 선의》
개인주의자 법관 문유석(이제는 법관직을 그만뒀지만)은 법이란 “최소한의 선의”라는 말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독일 법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가 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을 조금 바꾼 말이다. 법이란 도덕에 기초한 것이지만,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에서, 문유석은 조금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고 싶었다(적어도 ‘선의’는 ‘도덕’보다 따스하다. 그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거나 쉽지는 않지만).
헌법에서 시작하고 있다. 헌법과 법이 현재의 모습을 취하게 된 역사적 과정, 그것들이 목적하는 바, 그리고 적용되는 현실을 통해 ‘헌법의 근본적 가치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헌법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고민은 헌법이 하위로 두고 있는 법의 가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헌법과 법이 지키고자 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관과 사회에 대해 법을 고리 삼아 짚어본 제안이다.
법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문유석 전 판사이자 작가가 가장 강조하는 얘기는 헌법, 법이란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이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도 않았다. 주로는 유럽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이만큼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피가 뿌려졌다. 솔직히 그가 인용한 우리 헌법 1~2장을 읽으며 그처럼 나도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이 몇 문장을 얻기 위해 뿌려진 피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은 완전하지 않다(그래서 선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법이란 최소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문유석은 그럼에도 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경우의 혼란을 생각해서도 그렇지만, 법의 정신을 생각해서도 그렇단다. 물론 이 부분은 법은 전공하고 오랫동안 법을 다루었던 이에게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지만 법치주의란 법만을 들이대는 태도가 아니라, 그와 가장 관련 깊은 태도가 바로 ‘자유주의’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자유를 위한 조건으로서의 법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자유에 대해 ‘유별날 자유, 비루할 자유, 불온할 자유’를 언급하는 데서 그가 생각하는 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과 자유와 평등에 대한 보장이 법의 정신이라면 그 다음 닿아야 하는 지점은 ‘공존’이다. 문유석은 에필로그의 제목을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로 했을 만큼, 이 공존이야말로 법이 다다라야 할 목표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법 조문으로 때려 박는 차원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기대는 것은 ‘사고방식’이다. 법이야말로 타협의 기술인데(사실 많이 잊히고 있지만), 극단적인 대결만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법이 그 대결을 부추기는 상황을 안타까워 한다(그래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강조한다).
사실 최근에 법, 혹은 재판과 관련해서 조금 깊게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완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진로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 내지는 재판이 판결할 수 있는 범위에 관한 것이었다. 진로에 관한 것은 직접적으로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긴 하지만, 조언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범위와 관련된 것은 판사가 재판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 혹은 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해당 문제에 관한 전문성이 없는 판사가,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겠지만, 그 의견도 서로 상충되는 상황에서 (법이 아니라, 법 조문을 적시하지도 않았으니까) 자신의 상식에 맞추어 판결하는 것이, 과연 전문가 집단의 토론에 맡기는 것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아무튼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스스로 판단을 유보하고 법에 맡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도 깨달았고, 또 우려스러웠다.
잘 모르겠다. 일반인들은 법을 몰라야, 법의 존재에 대해 의식하지 않아야 편안한 사회라고 하는 글도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사회는 그렇지 않다. 세세한 법 조항이 우리 삶을 옥좨기도 하고, 혹은 숨통을 틔우기도 한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손해만 가져올 것이 뻔하다. 그래서 법조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냥 잘 모르는 일이라고 손을 놔서는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의 정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헌)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 이게 중요하다고 개인주의자를 선언한 전 판사이자 현 작가 문유석은 강조하고 있다. 상당히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