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형제들과 시대의 아픔

정종현, 《특별한 형제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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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기 평양의 개화파 유지인 정재명에게는 정두현과 정광현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재였다. 장남인 정두현은 각기 다른 대학에서 농학, 생물학, 의학을 전공하였고, 셋째 정광현은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최고 엘리트 형제였다.


정두현은 3.1운동에 참여하여 몇 개월 동안 구금되었다 나왔고, 정광현은 3.1운동의 감격을 잊지 못하여 이듬해 일본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처럼 비슷한 행로를 걸을 것 같던 형제는 해방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다. 북한에 남았던 정두현은 김일성제국대학 설립을 주도하며 권력 가까이에 다가갔고, 일제 때 윤치호의 사위가 되었던 정광현은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관리를 지냈고, 해방 이후에는 서울에 남아 미군정 관리를 거쳐 서울대 법대 교수로 활약한다. 정두현은 당국에 제출한 자서전에 서울에 있는 동생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대한민국학술원 회원까지 된 정광현 역시 북한에서 고위직에 오른 형을 언급하거나 그리워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형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행로가 완전히 갈린 형제의 예는 미군정 시기 검찰총장이고, 이승만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이인과 남로당원이던 그의 동생 이철에게도 찾을 수 있다. 이인은 변호사였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했다. 이철은 《역사 앞에서》로 유명한 서울대 교수 김성칠의 친구였다. 친구였지만 그는 학문으로 침잠하기를 거부한 행동파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해방 공간에서 좌익을 때려 잡는 기관의 총수가 된 이인에게 이철은 혹, 아니 암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저 시대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비극적인 관계였다. 한국 전쟁 당시 부대에서 낙오해 서울에 남을 수 밖에 없었고, 이후 공산당 부역자로 처형당한 안직조와 그의 동생, 애국가의 작곡가로 유명한, 그리고 지금은 나치 옹호자 내지는 일제 협력자로 의심받고 있는 안익태의 경우도 우리의 역사가 그러하지 않았다면 그런 운명을 겪지 않았을 형제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형제들도 있지만, 비슷한 길을 걸어간 ‘특별한’ 형제들도 있다. 《서유견문》의 저자이자 최초의 일본, 미국 유학생이던 유길준의 아들인 유만겸과 유억겸은 개화의 논리를 앞세워 (어찌 되었건) 친일의 길을 함께 걸었고, 호남 거부의 아들인 김성수와 김연수는 함께 기업과 언론사를 일구고, 학교를 세웠다. 정종현은 이들 형제를 당시의 인플루언서로 칭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일관되지 않은데, 그들에게 물려진 부(富)가,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군 다양한 활동이 그들에 대한 평가를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태곤과 민태윤 형제의 삶 역시 특별하다. 그들은 일제 시대 귀족이었다. 일제 시대의 귀족이라면 당연히 친일에 앞장섰던 이들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나, 그들은 그 편한 길을 가지 않았다. 민태곤은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수형 생활 끝에 풀려났지만 해방 1년 전 폐결핵으로 죽었다. 민태윤은 ‘갑자생’으로 항일비밀결사 활동을 했다. 일본군에 징집되었었고, 인민의용군에 징집되었다가 도망쳤고, 서울 수복후에는국민방위군에 징집될 뻔하기도 했다. 결국 살아남기는 했지만, 기구한 삶이었다.


형제보다 더한 동지로서 세상을 살다간 형제도 있다. 국내 사회주의운동의 개척자였던 김사국, 김사민 형제가 그랬고, 김형선, 김명시, 김형윤 남매도 그랬다. 오기만, 오기영, 오기옥 형제가 그랬다. 북한의 김일성 개인숭배를 반대하고 망명한 소련 유학생 여덟 명은 혈연을 넘어선 형제들이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연고에 굉장히 집착하기 때문에 어떤 두 사람이 형제라고 하면, 그들을 개별적으로 보던 시선이 옅어져 버리고 만다. 서로 같은 길을 걷더라도, 정반대의 길을 걷더라도 ‘형제’라는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고 그 전제 하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정두현, 정광현 형제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시선에서 도저히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없는 사람처럼 살다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형제에 대한 보편적인 상황에 더해 우리의 역사는 비극적인 형제들의 운명이 두드러질 수 밖에 없다. 독립 운동을 함께 했든, 사회주의 운동의 동지가 되었던, 함께 친일파로 부귀영화를 누렸든 그 길을 함께 한 것이나, 서로 다른 길을 걸은 것이나 그들이 살다간 시대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그저 다른 생각을 가졌던 형제, 혹은 같은 배에서 나왔으니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형제로 넘어갔을 그들이 비극의 시대를 거치면서 ‘'특별한’ 형제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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