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르크는 진화론의 선구자 역할을 했음에도 약간은 조롱받는다.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걸 바탕으로 진화를 설명했다는 이유로.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데서 그의 설명은 터무니없다는 투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사실은 다윈도 유전의 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획득형질의 유전을 옹호했다(물론 그것으로 다윈의 업적이 폄훼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획득형질의 유전에 대한 비판, 내지는 조롱은 21세기 들면서 다른 국면을 맞았다. 이른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의 등장 때문이다. 후성유전학은 DNA의 서열뿐만 아니라 후천적으로 변화된 특성(분자생물학적으로는 메틸기의 첨가, 혹은 상실 때문에 일어난다)이 적어도 몇 세대는 유전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라마르크가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사실은 라마르크가 획득형질의 유전을 독창적으로 주장한 것도 아니었고, 그의 저서에서 강조한 것도 아니었지만, 라마르크와 획득형질의 유전을 연결시키는 것은 거의 공식화되어버렸다. 이를 로렌 그레이엄은 “용례(usage)가 정확성(accuracy)를 압도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예를 이 책에서는 여러 차례 들고 있다).
후성유전학의 등장과 발전은 라마르크를 복권시켰을 뿐만 아니라 (일부이지만) 리센코까지도 무덤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다. 트로핌 리센코. 그는 누구인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유전학계, 아니 생물학계, 아니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멘델과 그 이후 서구에서 발달한 유전학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수많은 학자들을 숙청하는 데 일조함으로써(물론 자신은 부정했지만) 소련의 생물학을 퇴보시켰다. 그런데 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획득형질의 유전에 기초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고, 획득형질의 유전을 부분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후성유전학의 등장은 “리센코가 옳았다!”라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련 과학사의 대가 로렌 그레이엄은 과연 리센코를 복권시켜도 되는지 여부에 대해 러시아 내지는 소련 유전학의 역사, 현대 유전학의 역사, 그리고 현대 후성유전학의 의미 등을 종합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우선 리센코가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했다는 것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았다. 당시 획득형질의 유전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던 개념이었다. 러시아 혹은 소련의 유전학자들은 더욱더 그랬다. 물론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개념은 점점 쇠퇴해가는 실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리센코의 주장은 동시대 생물학자들의 것과 비교했을 때 전혀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획득형질의 유전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독창적인 것은 있었다. 한 종을 다른 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 그랬다. 세균 등에서 인위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런 일을 리센코가 식물에서 만들어낸 적은 없다. 그래서 로렌 그레이엄은 “그가 옳았던 부분에 있어서 그는 독창적이지 않았다. 그가 독창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는 옳지 않았다(Where he was right, he was not original; where he was original, he was not right.)”라고 표현하고 있다.
후성유전학과 리센코를 연결시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후성유전학은 멘델에서 시작한 고전 유전학의 전통에서 발달했다.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후성유전학이 나올 수 있었지만, 리센코는 분자생물학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또한 후성유전학의 많은 연구 업적과 문헌들이 리센코를 언급하는 일도 없다. 다만 리센코를 복권시키고자 애를 쓰는 측에서(주로 러시아의 일부 과학자 내지는 종교인) 후성유전학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부적절하게.
리센코가 소련 유전학자를 비롯한 생물학자들의 숙청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는 리센코 자신의 주장도 로렌 그레이엄은 한 마디로 비판하고 있다. 그가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스스로 그들을 사형장으로, 유형장으로 끌고 간 것은 아니지만, 그의 고발은 언제나 권력의 구미에 맞는 것이었으며, 늘 실제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그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는 과학을 정치에 귀속시켰다.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서 로렌 그레이엄은 과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리센코는 여전히 틀렸으며, 리센코주의의 복권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결론 맺는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다시 우리는 과학을 위협하는 것이 정치일 수도, 종교일 수도, 문화일 수도,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과학 자체가 과학을 위협할 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