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의 혁명가들

박훈,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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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교수는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서 메이지 유신이 ‘독서하는 사무라이들’에 의해 이뤄졌음을 보여줬다. 특히 200년 간 이어진 평화의 시기에 하급 사무라이들이 유학 경전을 읽으면서 시야를 넓히면서 천황과 쇼군(장군)의 관계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고, 서양의 접근에 대해서 일본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 국가적으로 고민하게 된 결과가 메이지 유신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에서는 바로 그 ‘독서하는 사무라이들’이 어떤 인물들인지에 대해 쓰고 있다. 특히 메이지 유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네 명의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이 네 인물들이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유신 이전에 암살당해 실제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메이지 유신의 이론적 기초와 인물들을 길러낸 인물이다. 료마는 사쓰마-조슈번 동맹, 즉 삿초맹약을 이끌어낸 주역으로 낙천적 성격으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그와 함께 일본인들이 추앙하는 사이고 다카모리는 무력으로 메이지 유신을 성사시켰지만 결국은 사무라이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장렬히 산화함으로써 전설로 남은 마지막 사무라이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냉철한 현실주의자로서 메이지 유신을 안착시켰다.


박훈 교수는 이 네 인물들의 성격과 활동을 통해 메이지 유신의 성격을 알리고자 하였다.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서도 밝혔듯이 메이지 유신은 지배계급 내부에서 벌어진 ‘혁명’ 아닌 혁명이었으며, 하급 사무라이들이 서양 세력의 등장과 함께 독서를 통해 눈을 뜨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써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하급 사무라이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바로 이 네 인물들인 것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성격은 달랐고, 또 지향하는 바도 조금씩 달랐지만, 계급적 기반은 거의 유사했으며, 협력해야 하는 지점에서는 과감히 협력하면서 자신들이 설정한 대의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들은 국가 운영을 위한 기본 소양을 독서를 통해 갖추었으며, 정세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었고, 행동해야 할 때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을 우리가 추앙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위기의 시대에 어떤 인물이 역사를 좌우하는지는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역사적 격변을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흐름을 통해 이해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그 격변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주도했던 인물들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특히 일본인들이 더 아끼고 추앙하는 인물이 사카모토 료마와 사이고 다카모리라는 점에서 (한 인물은 메이지 유신을 완성하지 못했음에도, 또 한 인물은 결국 메이지 유신 세력에 반란을 일으키고 무참해 패했음에도) 일본이 어떤 사회, 어떤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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